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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긍정 Dec 23. 2023

할머니의 증손자

유일한 효도


 할머니는 아기들을 정말 예뻐하셨다. 지나가다가 아기가 보이면 꼭 멈춰 서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기를 물끄러미 쳐다 보고는 하셨다.


 항상 너희 세 명중에 하나라도 빨리 결혼하라고, 죽기 전에 너희 중 한 명이라도 결혼하는 거 보고 죽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소원은 다행히 내가 지켜 드릴 수 있었다. 제대로 된 효도 한 번 한 적 없던 내가 결혼, 증손자까지 나에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우리 할머니에게는 노년에 큰 행복을 안겨 드린 것이다.






 아들이 이제 태어난 지 두 달 정도 됐을 무렵, 우리 집 근처의 대학병원에 작은할아버지가 큰 수술을 하셔서 병문안을 왔다가 아기를 보러 들리셨다. 할아버지가 한창 몸이 편찮으셨을 시기라 할머니는 꼼짝없이 집에서 병시중을 들고 계시던 시기였다.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열자마자 할머니가 튀어 들어오셨다. 겉옷도 벗지 않으시고 신발을 벗자마자 손만 씻으시고는 "애기 어딨 어." 증손주를 조심스럽게 안으셨다. 마침 낮잠을 충분히 자고 막 깼을 때였는데 증조할머니를 보고는 방긋방긋 웃어 보였다. 할머니는 너무너무 예뻐서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국민 속싸개인 스와들업을 입혀 놓고 있었는데, 이런 걸로 몸도 못 움직이게 해 놓지 말라면서 등짝 스매싱도 맞고 한참을 혼났다. 참 소소한 기억이지만 나에겐 생생하면서도 정겨운 추억이다.


 그렇게 아기를 안고서는 나와 육아 얘기를 도란도란 나눈 지 10분쯤 지났을까. 별안간 거실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밥 먹으러 가자고. 집에 오겠다는 연락도 당일에서야 받았고, 집에 차려 먹을 것도 없어서 밥은 시켜 먹던, 나가서 사 먹던 했어야만 했다. 나가서 먹자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삼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할머니는 "나는 여기서 대충 먹을 테니 다녀들 오시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참고 있던 할아버지의 화가 폭발했다. 내 생각이 건데, 할아버지는 굳이 힘든 몸을 이끌고 증손주를 보러 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의 간곡한 요청에 오시긴 했지만, 시장해진 탓에 예민해져 밥도 같이 먹으러 안 가겠다는 할머니의 말에 화가 잔뜩 나신 것 같다. 우리 할아버의 성격은 우주 최강 급하다. 결국 할머니는 증손주를 안아 보신지 고작 10분 만에 자리를 떠나셔야 했다. 돌아가시는 발걸음에는 아쉬움이 그득그득했다. 이 날이 할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만남이 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다음에는 제가 데리고 갈게요!"라는 나의 인사를 끝으로 친정 식구들은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가 흘렀을 무렵,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영상통화로는 자주 보여드렸지만 그 사이 한 번도 직접 찾아 가 보지는 않았고, 그렇게 예뻐하던 증손주를 한 번 더 품에 안겨 드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고작 1시간 거리인데, 뭐가 그렇게 힘들어서 가 보지 않았나 싶고, 할아버지를 돌보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그 와중에 할머니의 반찬이 먹고 싶다며 음식만 받아먹은 내가 나쁘게만 느껴졌다. 글을 쓸 때만 해도 내가 그래도 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렸으니 큰 효도 하나는 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글을 쓰며 회상을 해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결국에 나는 이기적인 손녀딸이었다.








 <나무는 고요하려고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효도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할머니와 손녀의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부모님보다도 더욱 짧은데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다. 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연인데, 조금 더 빨리 성숙했으면 살아 계시는 동안 더 잘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모든 가족들이 할아버지에게는 연락도 더 자주 드리고 더 자주 찾아뵙고 더욱 다정하게 해 드렸던 것 같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7년 후, 이제는 할아버지마저 할머니 곁으로 떠나셨다. 7년 동안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아주 많이 그리워하셨다. 지금은 두 분이서 가장 먼저 떠난 우리 집 강아지 바둑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계시고 있을 거라 믿는다.



할머니가 증손자를 안아 보셨을 때의 그 행복한 얼굴을 나는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 보고 싶어도 꿈에도 한 번 안나타 주시는 할머니. 이제 학교에 입학해 말도 잘하는 다 큰 증손주를 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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