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빈자리
작년 5월 나와 띠동갑이셨던 우리 할아버지가 95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나는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가끔 글로 적고 있다. 그런데 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적은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할아버지는 군인이셨다. MBTI로 따지자면 엄청난 J력을 가지고 계셨다. 심지어 본인의 장례식 준비도 거의 다 되어 있었다. 한 배낭 안에 현금 다발과 작은 수첩, 그리고 미리 사 두신 수의까지. 수첩 안에는 장례식에 불러야 할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안타깝게도 수첩 속 지인은 돌아가신 분들이 더 많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연휴 중에 돌아가셨다. 우리 자식들은 입을 모아 돌아가실 때까지도 자식들을 위하신다고 말했다. 회사 다니는 자식들을 위해 힘든 장례가 끝나고 단 하루라도 더 쉴 수 있도록...
젊었을 때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참 고생을 많이 시키셨다고 들었다. 10남매의 장남이었던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여읜 후 동생들을 아주 살뜰히 챙기셨다고 들었다. 요리 솜씨와 장사 수완을 모두 갖추고 계셨던 할머니는 가게를 내는 족족 맛집으로 소문이 났고 그에 따른 수입도 역시 좋았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하리, 그 돈이 자꾸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시동생들에게 채워졌고, 할머니는 정말 시댁에 시자만 나와도 치를 떠셨다.
내가 일본에 유학을 하던 시절, 할아버지의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다. 병이 있으셨던 건 아니지만, 그저 연세가 있으시니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는 의사의 소견이었고 할머니는 꾀병이 심한 할아버지를 간병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할머니에게 의지를 많이 하셨고 할머니 없이는 외출도 못하시는 지경이 이르렀다. 내가 결혼할 때만 하더라도 할아버지가 거동도 힘드셨고, 할아버지 본인을 비롯해 모든 어른들이 이제 얼마 못 사실 거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매년 가족여행으로는 할아버지의 고향, 군 시절 일했던 지역등을 여행했다.
이렇게 모든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는데, 정작 할머니가 한순간에 돌아가시자 모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의 준비도 없었던 이별이라 그 상실감과 비통함이 배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아픔이 할아버지보다 더 할 수 있었으랴.
장례식장은 할아버지의 손님들도 붐볐다. 어떤 손님들이 와도 담담하게 할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설명하시고 '허망하다'라고만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의 할머니 장례식 장면에서 큰아빠가 뒤늦게 오신 후에 어른들 모두가 부둥켜안고 울던 씬이 있다. 마치 그 드라마 속 장면처럼 할아버지도 동생들이 삼삼오오 모이자 그 속에서 할머니가 그간 본인을 만나 어떤 고생을 하셨는지를 말씀하시며 눈물을 훔치셨다.
20년을 같이 살았던 손녀딸은 이날, 할아버지의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어느 날 엄마가 할아버지께서 밤마다 잠을 못 주무시고 베란다에 나가 하늘의 달을 보며 눈물을 보이신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구슬픈 노랫자락을 읊조리시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딸로서 어떤 위로를 해 드려야 좋을지 생각하다 결국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다 싶어 가만히 있었다는 엄마. 엄마도 그 소리를 들으며 할아버지와 함께 눈물로 밤을 보내는 것 같았다.
7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내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 않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일상에서 느껴지는 할머니의 빈자리. 반찬부터 목욕, 외출 무엇 하나도 쉽지가 않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까지 7년의 시간 동안 큰 그리움을 가지고 견딘 긴 세월. 감히 자식들 누구 하나 그 마음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예전에 애지중지 키우던 강아지 '바둑이'를 만나 행복하게 산책을 하는 모습을 늘 상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