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 Bar
집에서 혼자 신서유기 게임 모음 zip을 보며 혼술을 거나하게 즐긴 후 일찍 잠에 들었던 금요일이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동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와 있었다.
퇴근 후, 역 근처 카페에서 잔업을 하다 마감 시간이 되어 어디 일할 만한 곳이 없을까 찾아보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곳이 LP Bar였다고. 그날은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손님이 본인 한 명뿐이었고,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아서 나에게 연락을 해 봤다고 했다.
나는 촉이 왔다. 우리 동네에 LP Bar라... "덕양구청 뒤편에 있는 곳이야?"라고 물어보자, 친구가 맞다고 아는 곳이냐고 물었다. 책에서 본 곳인데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다고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얼마 후, 다시 정식으로 약속을 잡고 가게 된 LP Bar <LYNARD 레너드>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모를 것 같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상가 건물 1층의 안쪽에 자리한 레너드. 상가에 들어 서자 둥둥 음악이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휴 전 날에 방문한 터라, 문을 안 열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었기에 다행히 기쁜 마음을 안고 가게로 들어갔다.
사실 LP Bar 방문 자체가 처음은 아니었다. 제주도에 놀러 갔을 때, 한 달 살기 중이었던 친구가 핫한 곳이 있다며 데려간 곳이 <마틸다>라는 LP Bar였다. 역시나 핫했고, 내부는 힙했으며 당연히 우리가 앉을자리는 없었다. 그 이후에 처음으로 다시 방문한 LP Bar가 바로 이곳 레너드이다.
가게의 첫인상은 'LP 진짜 많다!'였다. 사장님은 너무나도 성격 좋아 보이셨고, 사모님은 굉장히 친절하셨다. 친구가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이날은 손님이 많았다. 우리는 겨우 좋은 곳을 발견했는데 혹시나 가게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쉽사리 가게가 없어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 맥주와 오징어를 주문하고 음악 감상을 시작했다.
손님의 연령대가 다양했다. 우리 옆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은 굉장히 어려 보였다.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그 나이에도 이런 음악을 좋아하다니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들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30대 초중반의 연령대였고, 진짜 LP 세대의 손님들도 계셨다. 사장님은 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 말고도 가게에 있는 모든 손님들과 소통했다. 내 친구를 기억하며 전에 방문했을 때 신청했던 신청곡을 기억해 틀어주시기도 하셨다. 우리는 사장님의 센스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음악은 나라 불문, 장르 불문 다양하게 흘러나왔다. 신청곡은 종이 한 장에 하나씩만!이라고 테이블마다 적혀 있었고, 종이와 펜이 함께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흘러나오는 곡들을 경청하기만 하다가 우리도 한 곡씩 신청해 보았다. 내가 신청한 곡이 나올 때의 짜릿함이 있는 것 같다. 신청곡이 들어오면 앨범을 저 사진처럼 위에 전시해 주시는 듯했다.
새벽 2시가 되자 칼 같이 영업을 마치셨고, 계산을 하면서 책에서 이곳을 봤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작가가 마침 어제 방문하셨다며, 사장님과 사모님 두 분 모두 책을 보고 왔다는 말에 기뻐해 주셨다. 안 그래도 친구에게 같이 가보자고 하려던 차에, 친구가 혼자 찾아와서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친구와 함께 술과 음악, 여자에게 빼놓을 수 없는 수다까지. 완벽한 세 시간을 보냈다.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니 참 행복한 일이라며 조만간 다시 또 꼭 오자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