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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긍정 Jun 15. 2023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리커버 특별판)

도서 리뷰


 나는 책 읽는 것을 꽤나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작년 여름부터 다시 일을 하게 되면서 책을 볼 시간이 확 줄어버렸다. 그래서 오디오북을 출퇴근길에 듣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반년이 지난 후 매일 잠만 자는 나를 뒤돌아보며 그만두게 되었다. 책 좀 읽어야지, 책 읽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자꾸만 새 책을 사서 쟁여두고만 있던 중, 정말 감사하게도 도서 리뷰 제안이 왔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


이 책은 뭔가 독특했다. 이 책의 가장 중요 포인트일 수도 있는데 바로 예를 ‘’로 든다는 점이다. 평소에 소설이나 에세이는 많이 읽지만 시집은 잘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멋진 ‘시’를 많이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맘에 드는 시를 몇 개 필사해 놓기도 했다:)




최근에 어렸을 때 같이 살았던 우리 할아버지가 95세의 연세로 별세하셨다.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과 별개로 나는 요즘 사람 만나는 것도 힘이 들고, 일을 하며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것에서도 굉장히 지쳐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이 책이 지금 내 마음을 이해하고 머릿속을 정리해 주는 것 같다.‘라는 것이다.



1장, 밥벌이에서 보면 내가 요즘 항상 하는 말이 나온다.

“뭐 먹고살지?”

비정규직, 경단녀, 안정된 삶, 취업 등의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내 얘기인가 싶었다. 요즘 나의 최대 고민이다. 지금 계약직으로 일하는 나는 경단녀이기도 하다. 전공도 살리지 못했고, 아이는 아직 어린데 이다음엔 과연 풀타임에 전공까지 살릴 수 있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나만 생각하자니 어린 아들이 눈에 아른거리고 아들만 생각하자니 아직 젊은 내 인생이 아깝기도 하다. 참 어려운 문제이고, 아직까지도 머리만 복잡한 채 고민 중이다.



얼마 전에 엄마가 환갑이셔서 우리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2장에서 양희은 님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가사가 나온다. 요즘 나에게 참 와닿은 가사였다. 최근 유튜브 숏츠에서 일본 광고 하나를 인상 깊게 본 게 있다. 지하철에서 원테이크로 찍은 광고인데 아빠와 딸의 일생을 그린 내용이었다. 이 노래 가사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 여행에서 많이 느꼈다. 이제는 내가 더 잘 챙겨드려야겠구나. 어느새 보호자 역할이 뒤바뀌어 버렸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자녀를 위해 부모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부모를 위해 자녀가 존재하는 건지 모른다.

이 문장이 너무 공감됐다. 앞에 이야기와 반대로 아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점이다. 내가 힘들 때 마음이 무거울 때마다 아들을 보면서 힘을 얻곤 한다. 아들의 웃음소리와 애교는 나에게 힐링 그 자체다.



최근에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낀 적이 있다. 특히 SNS에서 그냥 친구니까 의무감처럼 누르는 좋아요와 댓글. 이런 것들이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냥 지나가다 하는

“언제 한번 밥 먹자” 같은… 그리고 늘 밝고 좋은 모습만 올라오는 SNS 공간. 그래서 요즘 게시물이나 스토리도 전혀 업로드하지 않고 들어가 보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SNS란 공감이다!라는 글이 툭 튀어나왔다. 그래. 그래서 시작했던 SNS였다. 공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매일 아기 사진을 올리며 그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 또 어디 놀러 갈 때면 먼저 가본 친구들이 꿀팁도 주고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해보지 못한 것들의 정보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SNS의 순기능! 다시 한번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7장 소유에서 사람은 얼마나 더 가져야 채워질까? 이 소유의 거품을 덜어내자는 의미에서 나온 미니멀리즘!

나는 이 미니멀리즘을 선호한다. 집에 가구도 많이 없는 편이고 안 쓰는 물건은 중고거래를 하거나 잘 버리는 편이다.

그런데 7장에 실린 시중에 ‘버리지 못한다’라는 시를 읽고 우리 할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버리지 못한다
                                               김행숙
얘야, 구닥다리 살림살이
산뜻한 새것으로 바꿔보라지만
이야기가 담겨 있어 버릴 수 없구나
네 돌날 백설기 찌던 시루와 채반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있고
투박한 접시의 어설픈 요리들,
신접살림 꾸리며 사 모은 스테인리스 양동이
어찌 옛날을 쉽게 버리랴

(중략)

지난날은 함부로 버릴 수 없는 것
한 번 맺은 인연도 끊을 수 없는 거란다.
            
                        - <멀고 먼 숲>(책 만드는 집, 2014)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방을 정리하는데, 대체 언제 적 물건인지도 모를 것들이 잔뜩 있었다. 살아계실 때도 8년 전돌아가신 할머니의 물건들도 전혀 못 버리시게 하셨는데, 항상 ‘나 죽거든 버려라.’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위의 저 시처럼 할머니와의 추억, 사랑, 그리고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손을 잡고 걸어 다니셨던 분들이다. 이제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 함께 하지 못했던 지난 8년간의 이야기를 꽃피우고 계실 것이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인생 수업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시는 그냥 글로 나열하는 것보다 더욱 마음에 울림을 주는 느낌이다. 정재찬 교수님의 편안한 글은, 어쩌면 우울감에 심적으로 지쳐있던 나에게 찾아온 기회라고 느껴졌다. 진심으로 책을 읽고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책에서 ‘슬플 땐 슬퍼합시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부분과, ‘메멘토 모리, 죽는다는 걸 잊지 마라’  이 부분이 많은 위로가 되었다.


나처럼 요즘 사는 게 팍팍하고 생각이 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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