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화 '남매의 여름밤'. 지금이 마침 여름방학이기도 하고 미리 보기로 보아하니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영화이기도 해서 D.P.2를 미뤄두고 이 영화를 틀어 보았다.
재생 버튼을 누르고 갑자기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져 네이버를 찾아보았다. 평점도 무려 ★9.06에 상을 굉장히 많이 받은 영화였다. 나도 사람인지라 호평과 상들은 영화를 보기 전, 더욱 기대감을 부풀려 놓았다.
남매인 옥주와 동주. 아빠와 함께 살던 집이 재건축에 들어가자 오갈 데가 없어진다. 아빠는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댁에서 지내자며 짐을 잔뜩 싣고 할아버지네 집으로 향한다. 할아버지의 집은 오래된 2층의 양옥집. 도착한 할아버지댁에 들어서는데 영화의 색감이 너무 예뻐서 감탄했다. 마치 닌텐도 스위치의 짱구의 여름방학에서 나오는 그런 색감과 감성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 여름방학에 시골집에 내려갔을 때 느꼈던 감정들이 느껴졌다. 특히 한참을 사촌들과 뛰어놀다 이제는 집에 들어가야 하는 시간. 바로 해 질 녘의 영상이 나올 때 문득 그때의 추억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할아버지와 아빠도 그리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데, 그 와중에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 친구집을 전전하던 고모마저 합세해 함께 여름을 지내게 된다.
이 영화를 끌고 간다고 볼 수 있는 옥주는, 사춘기 소녀이다. 부모님의 이혼, 가난, 외모 콤플렉스, 연애. 등으로 상처도 받고 고민도 많은 어린 소녀이다. 아빠가 팔고 있는 짭퉁 신발을 몰래 남자친구에게 선물을 한다던지, 중고거래를 하다 경찰서까지 가게 되는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속이 참 깊은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동주는 이 집에서도 영화에서도 재간둥이 역할이다. 해맑고 아직 뭣도 모르는 귀여운 막내다. 엄마와 떨어져 살지만 엄마를 좋아하고, 누나가 싫다고 해도 누나와 놀고 싶어 하는 그런 막둥이. 중간에 재롱을 부리며 춤을 추는 장면이 몇 번 나오는데 너무 귀여워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찾아온 자식들에게 살가운 아버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품어 주시기도 하고,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따뜻하기만 한 할아버지다. 함께 지내면서 밥도 먹고, 생일파티도 하고 함께 마당에서 방울토마토를 따기도 하고, 또 남매의 싸움을 중재도 해주시며 그렇게 새로운 추억을 쌓는다.
어린 남매들 말고 또 하나의 남매. 아빠와 고모. 이 둘은 모두 조금은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서로 배우자와의 사이도 좋지 못하다. 왕래 없이 지내다 오랜만에 동네 슈퍼에서 맥주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는데, 아버지가 바지에 대변 실수를 한다거나 자꾸만 멍하게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며 계속해서 몸이 안 좋아지기만 하는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여름방학이 끝나면 함께 있어줄 사람도 없는데 요양원에 모셔야 하나, 그렇게 되면 집을 파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이기적인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렇게 할아버지 몰래 집을 내놓고, 고모가 할아버지를 데리고 잠시 외출을 나간 사이,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집을 둘러보는데 옥주는 화가 난다.
"할아버지 요양원에 보내놓고 아빠 맘대로 집까지 파는 건 좀 심하잖아."
나는 이 대사를 듣고 어리고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고 속이 깊은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상물정 모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옥주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게 된다.
어린 남매는 둘만 집에 남아 라면도 끓여 먹고 전에 다투었던 일에 대해 서로 사과도 하고 두 남매만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어린 동생이 혼자 자려다 잠이 오지 않자 누나에게 찾아가 함께 자자고 청한다. 처음으로 둘이 함께 자고 있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옥주는 동생을 챙겨 깔끔한 옷을 차려입고 장례식장에 간다. 어린 남매의 대화 중 동주가 "엄마도 와?" 하고 묻는데 옥주가 "엄마가 왜와, 안 와."하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옥주의 감정이 굉장히 복잡해 보였는데 아무래도 옥주도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운 것 같았다.
그리고 밤이 되고, 정말 엄마가 조문을 왔다. 아빠 엄마 고모 그리고 두 남매는 한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는다. 이때 막둥이 동주가 또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우고 모두 행복해하며 식사를 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이 옥주가 잠에서 깨는 모습이다. 동주가 엄마가 왔다 갔다며, 누나 깨우지 말라고 선물 전해주라고 했다고 말한다. 옥주의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 영화의 앞부분에서 정말로 원하면 꿈에 나타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아마 장례식장에서 옥주가 직접 경험하게 된 것 같다. 옥주는 분명 엄마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장례를 마치고 할아버지댁으로 돌아왔다. 옥주는 섣불리 집안으로 들어서지 못한다. 아버지의 마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할아버지의 자개장에서 옷을 꺼내 갈아입는데, 창밖을 보며 잠시 주춤한다. 이 감정은 내가 굉장히 공감한 장면이다. 최근에 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마치고 할아버지댁에 갔다가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할아버지만 없다는 생각이 드니, 슬프기도 하고 참 기분이 묘했다. 별거 아닌 장면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연출과 연기가 모두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다 옥주가 눈물을 펑펑 쏟는다. 사춘기 소녀가 짧은 여름 방학 동안 겪었던 일들이 어쩌면 참 가혹하다. 그간 쌓였던 수많은 감정들이 폭발한 것이 아닐까. 옥주는 그렇게 또 한 뼘 성장을 했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주무대인 할아버지의 집의 이곳저곳을 주마등처럼 보여주는데, 할아버지의 오래된 2층집은 마치 나의 지난 추억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내가 이 영화에 스며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린 날의 여름방학이 떠오르는 영화였다.
<현실적이지만 따뜻한 가족 이야기>
이 영화에서 어릴 적 방학 때 할머니집에 놀러 갔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그 외에도 공감 포인트는 많았다. 물론 어린 남매 앞에서 한 대화는 아니지만, 슈퍼에서 맥주 한잔씩 하며 사실 오빠에게 서운한 게 많았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대화라던지.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자라는 얘기나 재산 얘기등. 어떤 집에서도 나올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나는 최근에 이 영화에서처럼 갑자기 응급실에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건강하셨기 때문에 요양원 얘기는 없었지만, 마지막에 옥주나 아버지가 느꼈던 감정들을 나도 고스란히 느꼈었다.
영화가 그래서 꽤 현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지막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려운 고민들이 한꺼번에 해결되는 느낌은 들었지만, 이것 또한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나의 어릴 적 여름방학의 기억과, 우리 가족을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였다. 나에게는 영상미와 BGM이 멋진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여름밤 따뜻한 울림을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