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나는 볼이 발그레했다. 당황했을 때도, 본의 아니게 주목받았을 때, 너무 신났을 때도 볼이 빨갰다. 그래서 늘 상기된 얼굴로 씩씩하게 뛰어다녔다. 엄마는 아직도 나의 유년 시절 중 붉게 물든 볼에 이마에는 땀이 맺혀 "다녀왔습니다."하고 크게 외치던 내 모습을 가끔 떠올린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재미있는 것도 많았고, 슬픈 것도 많았고, 몰입하는 것도 많았다. 한지 같은 아이였다. 금방 젖지만 쉽게 찢어지지 않는. 그런 나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포커페이스라는 노래가 히트를 쳤다. 차도녀, 쿨내 나는 - 같은 이미지들이 멋있게 대우받았다. 각종 면접시험에서는 압박 면접이 성행이었다. 나를 감추는 것이 멋진 사회에서 나 역시 그런 삶을 택해야 할 것만 같았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다. 외롭고 약한 내 영혼의 모퉁이가 혹여나 새어 나와 동정심을 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혼자 살던 나는 방어적으로 살았다. 무결하고 완전한 사람으로, 사랑받지 않은 순간이 없었던 것처럼, 내가 아는 세상은 모두 밝고 희망찬 것처럼, 나는 나를 외면했지만 그래도 나는 영원히 살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런 척 사는 순간들이 이어지고, 나는 고통도 잘 참는 사람이 되었다. 아파도 얼굴빛은 가리면 괜찮아졌다. 그런데도 방에 돌아오면 홀로 누운 침대에서 집에 두고 온 아끼던 인형이 만져지는 것 같았다. 얼굴빛을 숨길 대로 숨기고 집에 돌아와 가면을 벗으면, 그런 날이면 낯선 내가 적응이 되지 않아 꼭 울다가 잠이 들었다. 꿈마저도 괴상했다.
낯선 세상에 낯선 나, 끝없이 이어지는 고독은 굴레가 되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준비를 해왔던 것 같다. 순전히 나는 영원히 살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고독은 끊어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서서히 삶이 재미없어졌다.
무얼 향해 가는 지도 모르고, 내가 겪는 모든 것들에 의문이 들었다. 지나쳐온 건지, 지나가고 있는 건지, 혹은 당도했는지. 꿈에 다가간 게 맞다면 적당히 당도한 것일 텐데, 내 꿈은 이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이 지나갔다 믿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내가 꾸는 꿈이 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엉겨 붙은 가면과 그 속에 흉 져버린 민낯은 밤낮으로 울어댔는데, 그게 피든 눈물이든 구분이 필요하던 시점이었다. 그때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로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서운해서, "사람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에 대한 기준을 세워두었었다. 비틀거리는 사람은 안돼, 혼자 허공을 보고 말하는 사람은 안돼, 고양이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안돼.
안 되는 것이 많아지자 피하는 것이 늘고, 피하는 것이 늘자 상상 속에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게 됐다. 마주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다니는 시간을 줄이고, 스치지 않기 위해 몸을 반으로 접고 다녔다. 그리고 밖에 있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안 마주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이게 맞는 방법이라고 믿었지만, 아주 틀린 방법이었다. 나는 그렇게 사람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는 대인기피증이 되었다.
모르고 살거나, 이를 무시하거나. 삶에 끝이 있듯 내가 꾸미던 연극도 끝이 있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자꾸 줄어들면서, 모순되게도 나는 홀로 바로 선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나로서 살면 되는 것, 나를 드러내는 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무서운 건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미약한 담대함이 나를 지탱했다.
아직도 여전히 나는 밤이 무섭고, 사람이 무서운 때가 많다. 무서워서 얼굴을 붉히고, 당황하여 그런 얼굴을 여전히 숨기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좋아해서 뺨이 물들 때도 있다. 넘실거리는 감정이 차올라 얼굴까지 넘어올 때, 예고 없이 전화하고 메시지도 남기고 곧 만나자고 말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방법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물어보고 싶다. 오늘은 뭘 했는지, 좋은 하루를 보냈는지, 무얼 먹었는지. 대답을 듣는 동안 나는 허물없이 말해주는 그 사람이 더 좋아진다.
오늘로 세상이 끝난다면 누구나 다 서로에게 사랑을 말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남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함을 슬퍼하지 않을까. 끝이 있어서 소중한 삶, 영원히 살 수 없다 생각하니 자꾸 마음이 간질거린다. 더 많이 표현하고 싶어 져서는.
좋다고 표현하면 더 좋아진다. 무섭다고 말하니 더 무서워졌던 것처럼. 여생동안 좋아한다고 더 많이 말하면서 살 것이다. 너의 그런 점이 좋아, 멋져. 나에게도 말해줄 것이다. 나의 그런 점을 사랑해,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