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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를 올리는 순간

남자친구 자랑을 장황하게...

by 순두비 Mar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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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남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은 낮이었다.
그날은 먹고 싶은 것이 오랜만에 생각나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점심 준비를 하던 엄마가 특별한 음식은 없지만 밥을 먹고 나가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권하는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게 있어 나가겠다고 했을 때, 또 한 번. 그리고 집에서 먹어야 하는 이유가 있냐고 물어봤을 때도 다시 한 번.

엄마는 이유를 명확히 얘기해주지 않으면서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이라며 식사를 하고 가라는 말만 했다. 정작 반찬을 하나둘 계속 만들어내고 계셨다. 그게 이상하게 서운했다. 엄마의 음식은 언제나 정성스러운데 자꾸만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말이 어딘가 마음에 걸렸다.

곧 가족이 될 남자친구를 갑자기 초대하려는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신의 음식을 낮추는 듯한 그 말투가 싫었다. 이 감정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려, 밥을 먹는 내내 말이 없었다. 그런 내 기분을 남자친구는 도착하자마자 알아차렸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엄마는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먹고 싶은 거 못 먹게 해서 삐졌지?" 하고 물었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첫째, 둘째, 셋째까지 순서를 매겨가며 내 기분이 왜 상했는지 설명했다.
"‘먹고 가’가 아니라, ‘같이 먹고 싶어’라고 말해야 하지 않아?"
엄마는 "아이구, 까다로운 우리 딸. 그래, 알겠어."라고 했지만, 순간 나만 또 유난을 떠는 것 같아졌다.

고작 먹고 싶은 걸 못 먹어서 예비 사위 앞에서 엄마에게 토라진 사람이 된 건가 싶어 억울했다.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덧붙일 말도 찾지 못해서 식사를 마치고는 남자친구와 곧장 집을 나섰다. 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남자친구가 말했다.
"정윤아, 정윤이 마음은 알겠지만, 격양된 목소리로 어머니께 그런 말을 쏟아내면 어머니께서도 당황하셨을 거야. "
우리 집 문이 닫히는 소리만큼이나 내 말문도 턱 막혔다.

남자친구는 나를 데리고 마트로 향했다. 그리고는 내가 좋아하는 과일 코너로 가더니 딸기 한 박스를 먼저 들었다. 그리곤 엄마가 좋아하는 키위 한 박스도 카트에 담았다. 비도 내리고 날씨도 추운 날, 살뜰하게 집 앞까지 데려다주며 우산을 씌워주었다.

"딸기 먹고 기분 풀고, 어머니랑도 잘 풀어."

엄마와 나는 너무나 가깝고 잘맞지만, 가끔 눈에 보일만큼 조그마한 공백이 이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제 그 사이에 우리를 좀 더 딱 붙여줄 한 사람이 서있다. 지퍼처럼.

원래 맞닿아 있고 너무나 잘 맞지만, 중간을 맞춰서 천천히 올려주는 손길이 있어야 단단히 꽉 여물어질 수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우리 사이에 있어온 듯이,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지퍼를 올려주는 그런 사람이 내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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