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우선입니까, 길고양이가 우선입니까?" 아파트에 공지문이 붙었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어 똥파리가 끓고, 청소하기가 어려우며 아파트 사람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CCTV가 없는 곳에서 노상방뇨하는 아저씨를 보았고, 누군가는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린다. 헌옷수거함은 터져나가도록 쌓인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공지문을 붙이지 않는다. 인간의 더러움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길고양이의 생존에 관한 것만 문제 삼는다. 고작 그들의 짧은 생에서 밥 몇 끼인데.
고양이가 우선이냐는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이다. 고양이는 챙겨주는 사람이 소수이니까. 사람을 챙겨주는 사람은 많다. 하다못해 전화로 안부를 물을 수도 있고, 끼니를 잘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은 나라에서 쌀도 준다. 그런데 고양이는 세금을 내지 않아서 그런지, 길거리에 누워있어도 챙겨주는 사람은 소수다. 온전히 그들의 사비를 털어서 몇 킬로그램의 사료를 몇 번에 나눠서 주는 것이다.
길고양이들의 삶은 팍팍한 것인데, 이것은 인간과 환경이 닿아있을 때 더욱 심해진다. 인간이 고이 싸놓은 소중한 쓰레기봉지를 뜯을 때, 인간이 모셔놓은 음식물쓰레기통을 기웃거릴 때면 고양이들은 욕을 듣게 된다. 어쩌면 인간은 쓰레기 콜렉터인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쓰레기를 뜯어보는 고양이를 미워한다. 그 안에는 고양이에겐 밥이 될 거리가 들어있는 줄도 모르고, 버린 것은 인간이 아닌가?
고양이는 손가락 길이만한 바퀴벌레도 잡고, 지난 해 철없이 며칠이나 울던 매미도 잡았다. 그것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진 않았던가? 우리 아파트는 정말로 살기 좋은 아파트다. 인간만이.
인간이 잠을 잘 수 없으니 낮에 우는 직박구리도 추방해야하고, 밤을 뛰어다니는 쓰레기장 어디에 사는 쥐도 쫓겨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울타리에 엮여 자라난 장미꽃의 향기는 아무도 맡을 줄 모르지만, 장미꽃 근처엔 햇빛이 있어 고양이가 머문다. 아파트에 몇 송이 피지 않는 하얀 동백꽃이 화단에 필 때를 사람들은 모르지만 고양이는 안다. 고양이는 다 안다. 사람들이 자기들을 미워하는지, 사랑하는지.
고양이가 밥을 얻어먹으면 인간에겐 10만원의 과태료, 혼자 밥을 챙겨먹으면 추방이다. 나는 혼자 밥을 챙겨먹으면 가족, 친구들이 칭찬을 해주는데. 고양이는 왜 칭찬을 듣지 못할까? 그런 고양이를 챙겨주는 사람은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 인간은 무엇을 더 사랑해야 인간일 수 있을까?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한강, 작별)"
이 구절을 이렇게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지만, 가능한 더 많은 사랑을 남기고 싶은 나의 마음은 사람보단 사랑을 덜 받고 자라는 길고양이들에게로 향한다.
혐오가 큰 힘을 얻을 때는 약자를 타겟 삼을 때다.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폭력은 쉬워진다. 이제 우리 아파트 길고양이의 생존은 불법이 되었다. 햇빛이 비추는 곳이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가르릉 거리며 누워있는 노랗고 작은 고양이들과 같이 살고 싶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가면 3번도 더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는 고양이를 보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아파트 안의 유일한 사랑은 그들이 몰고오는 풍경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