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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Aug 27. 2020

내 마음의 다루지

다루지에는 저무는 해가 오래도록 머문다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해 마지않는 카페 다루지는 친구와 친구 가족의 일터이자 집이. 카페 내부에는 오랜 시간을 겪어 색이 바랜 것들과 오랜 시간을 겪어도 바래지 않을 것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이 공존하여 시간이 맴도는 공간이었다.

카페 다루지



강화에 위치한 다루지까지 가기 위해서 집에서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6시간은 족히 걸린다. 부산역까지 30분, KTX를 기다리는 시간, 타고 서울까지 가는 시간, 서울에서 다시 김포로, 김포에서 강화로, 강화에 들어서서도 카페까지 가는 시간을 모두 합치면 대략 6시간.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친구에 대한 고마움이 커진다. 내게 돈, 시간, 마음속 깊은 어느 구석까지 여느 것 하나 아끼는 것 없이 다 주는 친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제 한 번은 친구가 나를 만나기 위해 새벽 첫 차를 타고 부산에 내려와서 딱 하루만 자고 올라간 적이 있다. 나는 강화에 갈 때 몇 날을 묵을 것으로 생각하고 가는데,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내 얼굴 잠시 보겠다고 여기까지 그 시간을 들여서 내려온 것이다.


하루는 참 긴데, 혼자일 때만 그렇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1년에 겨우 몇 번을 만나면 누가 우리 시간을 다 가져가는 것 같다. 강화와 부산 사이에 오작교라도 놓여 까치가 바삐 흩어져가는 것 같다. 돌아갈 시간이 우릴 쫓아와 부산에서 함께일 땐 하루가 짧다. 슬프게도 코로나의 여파로 이런 짧은 시간도 함께한 지 한참이 되었다.




최근 내가 살고 있는 집 주변에는 카페 거리가 조성되어 외지인들이 많이 보인다. 동네 주민으로서 아침 일찍 유명한 카페에 앉아 혼자 책을 읽고, 바다를 보다가 카페를 나설 때면 꼭 다루지가 생각난다. 다루지를 부를 때 내가 꼭 하는 말, '내 마음속의 다루지'.


솜이와 유자의 형뻘인 고양이 살구와 낯선 나에게도 잘해주는 강아지 탱자와 호두까지, 다루지는 복작거리지만 물결 하나 미동 없는 저 먼 수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부산의 바다와 멋진 다리가 보이는 이 풍경이 싫은 것도 아니지만, 어느 카페를 가도 나는 다루지가 그립다. 친구가 그리운 것도 맞는 말이고, 다루지에 가면 느낄 수 있는 느린 시간이 그립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그 위로 내게만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새들이 날아가는 다루지의 오후.



그 오후에 친구의 아버지와 친구, 그리고 내가 나란히 앉아 맥주한 잔씩 했다. 아직 친구의 아버님께서 만나보시지 못했지만 연배가 비슷한 우리 아빠에 대한 이야기와, 이름을 몰라 '저 새'라고 불렀던 그 새에 대한 이야기 하다 보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 부모님과 친구의 부모님이 만나게 될 날을 얘기했다. 아직 부모님은 강화도에 와보지 못하셨으니까,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서 와야겠단 생각을 했다. 맥주캔이 가벼워질 때쯤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에 또다시 이름 모를 새들이 날아갔다.



내 마음이 다루지에 가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자주 서성이니까, 배회하는 김에 그곳까지 가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겠지. 이름 모르는 새가 있어도 괜찮은 곳, 사랑하는 친구와 그 가족들이 있는 곳. 많은 것을 내려놓고 또 채울 수 있는 시간. 다루지의 오후.




시든 꽃도 녹슨 드럼통 앞에서는 시간이 무색해 안쓰러워 보이지 않았고, 활짝 핀 꽃을 좋아하며 해맑게 카페를 들어선 노부인의 마음은 갓 태어난 강아지가 세상을 대하는 설렘보다 컸을 것이다. 도시에선 이름을 잃은 어떤 새들도 이 곳에선 이름으로 불리었다. 하물며 저무는 해가 뜨거운 여름을 맞을 생각에 얼굴을 붉히며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도 그의 자태를 지켜봐 줄, 그리고 함께 기다려줄 사람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탱자(왼)와 살구(오)

지나갈 것, 머물 것, 그리고 새로이 다가올 것까지 다루지는 분주한 곳이었지만 편안한 곳이. 물이 빠져나 갯벌의 구멍이, 밀려온 다른 모래로 채워지듯 이곳에서의 내 존재가 그랬을 것이다. 며칠을 묵다 자리를 떠도 새로운 기쁨이 찾아와 내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그 친구가 내겐 그런 존재이기도 했다. 내게 슬픔이 찾아오면 친구가 다가와 새로운 것들로 채워주었고, 그 덕에 내 일상은 늘 비슷한 해수면을 유지했던 것이었으리라. 내가 그 친구를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전의 글처럼 나를 일으킨 말을 적을까 했다. 그러다가 관둔 이유는 나의 지금 이 시간이 누구 덕에 지켜졌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말을 콕 집어 기억하지 않아도 친구의 말과 사랑은 나의 뼈와 살로 잘 아물었다.


내 마음속의 다루지는, 다루지의 오후에는 늦게까지 해가 떠있다. 혼란스럽고 또 조심스러운 나날들 사이에서  마음의 다루지, 그리고 그곳의 친구를 오래도록 떠올린다. 로나가 끝날 때쯤 꼭 만나자는 요즘의 인사가 이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해가 다 저물기 전에, 어느 날 다루지에 다녀와야겠다. 응급실에 다녀왔던 어느 날 내 자취방에 몰래 와서 죽을 올려두고 말없이 가버렸던 고마운 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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