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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Aug 30. 2020

겨울에서 봄으로

공모전에 당선되었던 글귀 두 편이 책으로 엮어져 출간되었다. 여태 몇 편의 책에 글을 수록했지만 이번만큼은 감회가 남달랐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라 썼던 글귀 사랑받은 기억이라 그런 것 같다.


봄을 주제로 한 공모전이었다. 국민들이 힘을 낼 수 있는 말을 해달라고 했다. 그 무렵의 나는 누구의 말로도 힘을 낼 수 없었던 상태였다. 사실 왜 힘을 내야 하는지 이유도 몰랐다. 아침이면 눈을 뜨는 것이 너무 힘들고, 밤엔 잠이 들기 무서웠다. 내일이 오는 게 시한 선고를 받는 것 같았다.


모두가 집을 비운 뒤, 느지막이 혼자 집에서 밥을 먹으나의 쓸모를 생각다. 답이 없는 것 같아 고개를 들면  베란다 큰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빛이 나를 지울 수도 있겠구나.

어떤 것이든 다 무서웠다.




그때는 겨울이었다. 아직도 날이 쌀쌀해질 때쯤이면 머릿속에서 절로 밀려 나오는 글귀가 있다.


고맙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저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주십니다.
기형도, 램프와 빵


별생각 없이 이 시를 좋아했을 땐 겨울이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준단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에 고맙다는 말은 더욱더 그랬다. 하지만 오래 마음속에 남겨둬서 그랬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시간에 쫓기듯 살게 되었을 때부터는 말의 무게가 느껴졌다. 옷의 무게가 더해질 때쯤이면 나도 같이 짓눌린 것이다.


올해에는 작년과 다른 연말이길 바라며 연말이 다가올수록 바삐 살았다. 내 눈으로 성과물을 보고 싶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데, 바쁠수록 페이스 조절을 못해 겨울이 시작할 쯤이면 바짝 엉켜버린 실처럼 꼬여갔다. 그러다가 결과물을 받아 들면 그건 그냥 본래 실의 모습이 아닌 엉켜버린 공이었다.


실이 엉켜 공이 되었으면 공을 굴리고 살면 될 텐데, 실이 필요하단 생각만 했던 것 같다. 텅 비어버린 이상적인 나의 쓸모와 나를 이어 줄 실이 필요했었나 보다. 무엇으로라도 채우면 그것이 현존하는 의미가 되어줬을 텐데, 나는 매일 과거에 살고 그게 괴로울 땐 미래로 도망쳤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몇 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시간이 절로 흐른 뒤엔 내가 조금 더 행복해져 있을 미래 피신해 살았다.


시간은 절로 흐른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어도 흐르고, 글을 써도 지나간다. 시간은 많은 것을 가져간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늙었으므로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게 다가와 많은 부산물을 남겼다. 시간이 지나가는 통로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행복한 미래만 꿈꾸던 내게 이 부산물은 곧  불순물이었다.


어느 날 모든 것이 잘 풀려 행복해진 우연 속의 미래도 노력해야만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나는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공모전을 보고 단 몇 분만에 글을 써서 냈다.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다. 쓰기는 1, 제출하기를 고민하는데 4분. 평소에 짧은 글을 써도 열댓 번도 더 읽는 내가 고민도 없이 글을 완성한 것이다. 그것이 기가 되었을까? 한동안 '내 글이 서울 한복판에 걸리면'을 가정하고 다니느라 행복했다. 보통은 바다가 보이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잔잔한 생각을 많이 곤 했다. 동시에 같이 침전한 상태로 다녔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상을 미리 받은 듯한 기분과, 그런 상상을 하며 기분이 내내 좋았다.


나는 불면증이 있어 밤엔 잘 자지 못다. 일어나고 나서 좀 깨어있다가 오전에 다시 한번 더 잠을 기도 한다. 그날도 대낮까지 잠을 자다가 깨서 시간을 보려고 했는데, 서울에서 걸려온 모르는 번호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스팸전화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다시 문자가 들어왔다. 공모전에 당선된 것과 관련하여 전화를 남긴 것이라고 했다. 가족들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 모두가 함께 기뻐해 줬다. 내가 더 잘될 일만 남은 것이라고.




나는 계절과 희망을 말했다. 그걸로 상도 받았다. 하지만 우습게도 시간은 절로 오고 가지만, 희망찬 계절은 절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의지 없이 살면 사계절이 다 똑같이 추웠다.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면, 그저 앉아서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머리 위에 소복하게 쌓인 흙을 밀고 나가는 새싹의 사투 정도는 했어야 한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좋은 일이 생겼으니, 이제 나는 잘될 거란 막연한 생각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부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널브러져 있다 보니 누워는 것이 싫었다. 우연히 내겐 좋은 일이 생겼는데, 그럼에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복이 고까워서 일어나 앉았다. 무언갈 해야 결과라도 받아볼 텐데! 무너진 것을 쌓는 것 도가 터있었다. 음부터 해야지, 별 수가 있나. 높이 쌓지 못하더라도 바닥부터 다져서 무언가를 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을 하면 내가 행복할까 고민을 하다가 공모전에 이런저런 글을 내보았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문안 공모전, 카피라이팅, 네이밍까지 닥치는 대로 내보았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고 노력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희한하게도 계속 상을 받았다.


마치 시간이 내게, 이 모든 결과물이 연이 아니라 네가 노력해 얻은 것도 있다고 어렴풋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었고, 또 한 번 같은 공모전에 글을 냈다. 여러 상을 받은 뒤에도 불신이 가득했던 나는 이번에 한 번 더 받으면 이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리고 가오는 봄에 같은 상을 받았다. 이름 없던 날들이 이 되었다.



우연히 찾게 된 발간 소식이 너무나도 반가웠다. 겨울이 다 지나가는 것이 무서워서 썼던 글이 책의 표지에 다는 사실만으로도, 또 한 번의 추운 날씨를 앞둔 내게 위로가 되었다. 또 블로그나 뉴스 댓글에서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았다. 로소 나는 진짜 봄을 거닐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겨울을 보내주었다. 간절한 사람은 시간 앞에 거만해지지 않는다. 어떤 사정이라도 매달려 봐야 하니까. 지금 봄을 거닐고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 간절하고도 겸손한 마음으로 꼬박 달려 겨울을 지나온 이다.





내게 글이란 미장공의 흙이다.


골조 사이에서 특별히 모난 부분 없이, 그러나 무너지지 않게 차분히 당신과 나를 잡아줄 흙이다. 흙은 가장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품으니, 인식하지 못한 순간에도 당신의 깊은 마음속 바닥을 다져갈 것이다. 언젠가 당신의 뇌리에서 불현듯 생각나, 한 움큼 퍼내어 또 다른 건물을 쌓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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