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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Sep 09. 2020

사람이라 쓰고 사랑이라 불렀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생일을 맞아 적어보는 내 이름 이야기.


예전 내 이름은 외로운 뜻을 가졌다고 한다. 전혀 모르고 살았지만, 이름을 바꾸려고 하는 과정에서 그런 뜻풀이를 들었다. 자꾸 내가 아프니까, 내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부모님의 권유로 이름의 한자를 바꾸게 되었다. 처음엔 정든 이름을 떠나보내는 것 같았지만 막상 바꾸게 될 한자를 받고 보니 애정이 생겼다.


옥홀은 왕이나 왕비가 제복을 착용할 때 손에 쥐었던 의식용구다. 내 이름의 중간 글자, 정은 '옥홀 정'을 썼다. 왕의 체스판을 읽는다고 불리는 공부를 했던지라, 이름이 내게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포기하기가 싫었다.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는데, 혹시나 내가 이름 덕에 잘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미련한 생각을 한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너무나 외로운 운명일 텐데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삼촌의 도움으로 내 마음만 고쳐먹고 나니 이름을 바꾸는 일이 척척 진행되었다. 처음으로 법원에서 서류도 받아보았다. 나라에서  이름에 쓰일 새 한자를 아주었다. 그리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고 했다.



새내기 대학생일 시절, 동아리도 열심히 하고 과 사람들도 열심히 만나며 바쁘게 살았었다. 그땐 '다음에 밥이나 먹자' 같은 인사가 기약 없는 것인 줄도 모르고 무작정 그 약속과 사람을 기다렸다. 하지만 감감무소식이란 이럴 때나 쓰는 말인지, 밥이나 먹자고 했으면서 왜 만나잔 말을 하지 않는지 당최 몰랐다. 나도 그런 인사 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처음엔 상처를 많이 받았다. 


기숙사로 돌아오면 매일 불 꺼진 방 날 기다렸다. 비슷한 또래의 다른 새내기들도 다 그럴 시기였다. 그래서 룸메이트 역시 귀가가 늦었다. 방은 텅 비어있었다. 내 손으로 방안의 불을 켜야 했다. 또 만나, 또 보자, 밥 먹게 연락해, 같은 텅 빈  인사만 남아서 그랬는지, 방에 돌아와 들고나갔던 가방을 푸니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나 싶었다.




고등학생 때 부산시교육청이 한 달에 한 번씩 주최하는 특강을 들으러 다녔다. 다른 건 다 잊어버렸지만 아직까지도 딱 하나 기억하는 것이 있다. '사람 인' 한자가 그리 생긴 이유는 인간은 서로 기대야 일어설 수 있고,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하던 때가 있었다. 그게 아마 대학생일 시절이었을 것 같다. 혼자서도 살아진다고 믿었다. 나만 잘하면 되는 거라고, 나만 괜찮으면 되는 거라고.


나를 아끼는 어떤 분께서 상처 받고도 고고한 척 사는 어린 나의 속내를 아셨는지 조언을 해주셨다. 모든 사람이 쉽게 드나드는 운동장이 되지 말라고 하셨다. 이름을 바꾸고 나서야 그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운동장도 사람이 이용하긴 똑같은데 왜 운동장은 되지 말라하는 건지, 왜 나는 이것을 쓸쓸한 곳으로 받아들였는지 고민해보았다. 첫째로, 나부터가 이 곳에 정을 두지 못했으니 누가 오고 가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곧 지나갈 사람이라 믿었다. 둘째로, 애정이 없으니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휩쓸려 다니며 나도 누군가에겐 오고 가는 것이 상관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같이 뛰어야 하는 건지, 눈 앞이 막힘없이 훤히 펼쳐진 곳이라 흙먼지 속에서도 사람들의 동태만 살피며 허송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애정을 갖고 돌보지 않은 관계는 꼭 죽었다. 그걸 살려내기란 힘들지만, 처음부터 죽지 않게 돌보는 것이 을 것 같았다.


지금 내 이름은 정원 정, 햇빛 윤을 써서 햇빛 드는 정원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누군가 쉽게 들어서니 운동장과 다를 바가 없긴 한데, 조금 더 포근해진 기분이라 좋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은 적적했는데, 정원에 있으면 볼거리가 많다. 내가 서성일 수 있는 시간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애정 가는 사람에게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먼 미래가 될 수도 있고,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30살엔 꼭 스위스에 다시 가자', '맛있는 거 살게, 곧 만나자!', '올해는 꼭 두 번은 보자' 이 모든 말들이 진심이다. 밥 먹게 연락하란 시일 없는 말도, 살다가 언젠가 내 생각이 난다면 내게 편하게 연락 달란 미련 넘치는 인사다.


우린 모두 다르다. 당신과 내가 똑같은 시간을 살 수 없는 것은 더욱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말이라도 해놓아야겠다 싶었다. 우리 각자 앞만 보고 달려가다보면 평행선일지라도 미래의 어느 한 지점에서는 만나 얽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닿지 을지도 모르는 선을 힘껏 구겨놓는다. 닿아서 우리 다시 보자고. 


이 관계에 미래가 없다면 현재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현재에 살고 '우리'는 미래에 살도록 보낸다. 오늘을 사는 원동력은 그곳에서 나온다. 내가 당신과의 대화에서 헛투루라도 뱉지 않았던 미지의 시간을 위해 오늘 힘을 비축하고 또 살아간다. 내가 우리 관계를 사랑하는 방법이자, 사람을 사랑하는 나를 위해 선택한 이다.



 는 정원의 어떤 나무 앞에 서서 우리의 오늘을, 어떤 여린 꽃 앞에서는 우리의 내일을 생각할 것이다. 그럼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 금방 지난다. 가 진짜 마주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당신이 이 정원에서의 기억이 좋았다면, 다시 한번 이 곳을 방문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책과 향이 좋은 커피를 준비해, 다시 만났을 때의 우리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다듬는다. 내가 이곳을 지키고 있으면  서로 기대어 서는 것은 쉽다. 당신만 오면 완성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의미를 가지는 것은 더욱 쉬워진다. 리가 붙어 앉아 보내는 순간에 로를 불러주면 그게 곧 이름이까, 이름이 곧 삶과 내 시간의 의미가 된다.


나는 지금의 이름이 좋다. 그렇다고 예전의 이름이 싫은 것도 아니다. 더 따뜻해진 지금의 이름처럼, 내 '이름대로' 살기엔 너무 감사한 일이다. 왕이 되어 높은 곳을 홀로 지키는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시간을 지키는 것이 더 행복하다. 복한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니!



다시, 인간은 사람으로 살아진다.

사람은 으로 살아진다. 것이 찰나의 것일지라도. 누군가 찰나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기고, 찰나 같은 시간에 밤하늘에 긴 금이 간다(별똥별, 강은교). 그 시간 속에서 밤낮을 함께 지새운 사랑이 짙어진다.


사람, 사랑.

사람과 사랑은 아있다. 그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 너무 쉬운 일이다. 시간 앞에 큰 절벽이 깎여나가듯, 시간 앞에 뾰족했던 모서리는 모두 닳는다. 사람이 곧 사랑이 된다. 모서리가 깎여나가면, 빈틈없이 지름을 꽉 채워 서로를 안아줄 수 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면 그것을 인연이라 부르고, 사람은 사람을 사랑할 때 온전히 살아진다. 


우리 곧 만나 밥 먹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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