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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두비 Dec 30. 2020

부산에 눈이 왔다

출근길 나를 채우는 것들

그냥 넣는 부산의 흔한 출근길 풍경

브라스 소리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전곡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놓았다가 정신없이 다가오는 말일 덕에 듣지 못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혼자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날이라 이어폰을 꽂고 길을 나섰다. 첫 곡은 버스를 기다리면서 들어보고 싶었던 곡을 들었다. 그리고 버스가 와서 올라탔고 그 이후부터는 아무 곡이나 나오는 대로 들었다. 처음엔 렉이 났나 싶을 정도로 음악이 약간씩 끊겼다. 그러다 보니 영화 '엑시트'의 구조 신호가 떠올랐다. 지난밤 괴로워했던 나를 신께서 구해주려고 보내는 신호인가 했다.


내가 좋아하는 브라스 소리가 나왔다. 간밤엔 이렇게 마음이 괴롭지만 잘 뛰어주고 있는 심장에게 고마웠다. 베갯잇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심장소리를 세다가 잠이 들었다. 브라스 소리가 그렇다. 낮엔 잘 들을 일 없는 심장 소리 대신 힘차게 나를 응원하는 것 같다.

Sam Smith - Love goes를 들었다!


좋은 이름 짓는 곳

버스에 사람이 많아서 창밖만 보고 가는데, 좋은 이름 짓는 곳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맞다. 내 이름도 좋은 이름인데!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는 써보지 못한 이름과 다시 지어와서 한참을 잘 쓴 이름과 앞으로 더 잘 살자고 쓰고 있는 지금 이름까지, 내 이름의 역사는 다. 그리고 내가 잘 살길 바라는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사랑이다. 이름 세 글자에도 힘이 있다면 오늘도 나를 이끌어줄 것이다.



버스 기사님의 인사

"할매, 바람에 날아가겠소." 거친듯한 인사가 다정하다. 입을 가려도 마음은 다 가려지지 않았다. 버스가 너무 늦게 온다는 할머니에게 이제 많이 기다려야 탈 수 있다고 기사님께서 연신 설명을 하신다. 코로나 탓이란다. 세상은 좀 더 팍팍해진 것 같은데 여전히 따시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은 바쁜데도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살아가라고 말한다.



간밤의 꿈

흰 옷을 세 벌이나 빨지 않아서 녹이 슬어있었다. 얼마나 대충 처박아뒀으면 옷장 속 철제 이음새에 옷이 끼어서 녹물이 밴지도 몰랐다. 옷장도 오래되었나 그새 녹이 슬다니. 그래도 빨면 하얘질 것 같아서 대수롭지 않게 빨래통에 넣었다. 옷이 깨끗해질 것이란 기대감에 기다리다가 잠이 깼다.



부산이라 눈은 안 오겠죠?

어제 너는 우산이 하나밖에 없으면서도 내게 우산을 주려고 했다. 자긴 엄마가 역까지 데리러 나올 거라며 작은 비닐우산을 내게 내밀었다. 저만치 작고 투명한 비닐우산을 건넸다. 오늘 밤부터 비가 내릴 것이고,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눈이 올 수도 있다는 부산의 재난문자를 같이 읽으며 "언니, 그래도 부산이니까 눈은 안 오겠죠?" 묻는 말에 밤새 많이 추워진다고 해서 그건 모르는 일이야, 하고 답했다. 그리고 잠시 부산을 떠나 있는 너는 또 귀한 눈을 놓쳤지만 오늘 출근길의 부산에는 내내 눈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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