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연중에 광주에 꼭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토록 갑작스레 광주를 다시 찾게 될 줄은 몰랐었다.
취업을 하는 것과 글을 쓰는 삶을 두고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신호등 앞에 선 기분이었다. 뭔갈 하려고 하면 빨간 불이 들어오고, 포기하려고 하면 초록불이 들어오는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광주로 향했다.
인생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말을 간간히 삶에서 인용해 오곤 했는데, 3일간의 짧은 여행도 그랬다. 광주로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곳에서 태풍을 맞게 될 줄은 더욱이 예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혹시나 해가 뜰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에 작은 우양산을 챙겨 온 탓에 강풍을 뚫고 어딘가를 가기란 힘들었다.
언니는 서울에서, 나는 부산에서 출발하여 광주에서 만나기로 했다. 광주 터미널에 접어들 때쯤부터는 버스가 자주 신호에 걸렸고, 누가 먼저 출발했는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었다. 언닌 먼저 꿈을 향해 나선 사람이 되어 나를 이끌어 주었고, 나는 버스터미널에서 언니를 기다렸다. 생에 얼마나 많은 신호가 있는지, 또 몇 갈래의 길일지, 몇 번의 교차로를 더 지나야 할지 인생은 모르는 것이었다.
무엇을 먹을지 동선을 짤 때도 그랬다. 어떤 곳은 직전 끼니를 생각하며 배제하고, 어떤 곳은 동선과는 뚝 떨어진 거리 때문에 갈 수 없었다. 찾아온 맛집 리스트 역시 다 필요 없었다. 언니와 나는 결국 지도를 보며 그때그때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정작 큰 계획이 있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휴가는 무언갈 하려는 게 아니라 휴식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며 어딘가로 그저 걸어 다녔다.
함께 태풍을 맞은 언니는 내게 참 고마운 사람이다. 걱정으로 어지러운 내 마음을 한 번에 '교통정리'를 해준 따뜻한 사람이었다. 계획 없이 만나 궂은 날씨 속을 돌아다니는데도 군소리 하나 없이 즐거워했다. 일정이 없었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한 것도 길 위에서의 몫이었다. 낯선 곳에서 우산을 들고 길을 찾는 것이란 두 손에 세 개의 짐을 드는 것 같았다. 언니와 난 다음번에 오는 버스를 타자며 무작정 버스 정류장에 서있었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광주 시민 한 분이 문화의 전당이란 곳에 가는 것을 추천해 주셨다. 계획이 없었기에 어디로든 향할 수 있었다.
문화의 광장에 들어서서도 어디에 볼거리가 있는 것인지 잘 몰랐다.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듯한 공간에도 들어갔다가, 여긴 아니다 싶어 옆 건물로, 또 옆 건물로 이동하다 어떤 전시관에 들를 수 있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어딜 들렀는진 잘 모르지만 잠시 비를 피하며 들어선 건물에서, 우산을 걷으면 머리털이 반쯤 젖은 언니와 내가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자 어딜 향해갈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좋았다.
우리의 하이라이트는 첫째 날 저녁, 사람이 다 차서 먹지 못한 양고기 가게였다. 꼭 먹을 것이란 비장한(?) 다짐과 함께 예약을 해두곤 이튿날 저녁에 다시 찾았다. 바깥의 쌀쌀한 날씨와는 대비되는 구석 아늑한 자리에서 부드러운 양고기를 먹었다. 언니와의 옛날 추억이 절로 나왔다. 어떤 것은 곱씹으며 음미하고, 또 어떤 기억은 한 입에 꿀떡 삼키며 크게 웃기도 했다. 우리는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지나와 오늘에 당도한 것을 두고 서로 기쁜 마음을 연신 쏟아냈다. 같은 기억, 서로 다른 조망을 두고 얘기하며, 나는 종종 힘이 없다고 표현되는 추억에 등 떠밀려 또 새로운 교차로로 떠밀려갔다.
그러다 밥을 다 먹고 나왔을 때, 나는 큰 고민이 아닌 것처럼 언니에게 말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고민하는 동안 저만 뒤처지는 것도 같고요." 그러자 언니는 특유의 시원한 미소와 함께, "정윤아, 잠시 백수여도 괜찮아. 한발 늦어도 어차피 다음 신호에서 다 만나."라고 했다.
밤이 깊고, 생각은 깊어지고 다음 날 아침이 왔다. 퇴실 시간을 늦춰도 에어비앤비의 호스트가 별 말을 하지 않을 만한 날씨였다. 태풍이 절정이었을 때 언니는 서울로, 나는 부산으로 다시 길을 떠나야 했다. 건물 1층의 편의점에서 5천 원짜리 우산을 새로 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우산을 피는 순간 우산이 뒤집어지며 부서졌다. 그대로 나뒹구는 우산을 붙잡고 보니 비에 홀딱 젖어있었다.
빨간불 앞에 선 나는 숨을 참았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 연약한 우양산을 가진 내 운명 앞에 태풍이 멎은 것은 더욱더 아니었고. 내가 주로 거닐던 길은 날카로운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어서 조심히 다녀야만 했다. 혹여나 찔리면 나는 한참을 아파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추억에 힘입은 내가 파편의 모서리를 후-하고 불어냈다. 실패의 기억에 찔리지 않으니, 실패인 줄 알았던 상처는 경험으로 남았다. 새로운 신호를 기다리면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달리고 싶어졌다.
"If you make a mistake, get all tangled up, you just tango on" (여인의 향기, 1992)
만약 탱고를 추다가 실수를 해도, 스텝이 엉키게 돼도 그게 바로 탱고입니다.
영화의 더 멋진 대목은 이 부분이다.
"Why don't you try?"
한 번 시도해 보면 어떠냔 질문이다. 결과를 알 순 없지만, 실수도 실패도 모두 탱고가 되니 망설일 이유는 없다. 불확실의 세상, 미완의 내가 살아감에 필요한 것은 용기였다. 노란 불이 켜질 때쯤 밀고 갈지, 서있을지를 결정할 용기.
우산을 잡으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내 모습이 혼자 거나하게 추는 탱고를 보는 느낌이었다. 별 것 아닌데도 어찌나 웃기던지, 준비해 놓은 5천 원짜리 우산은 이제 쓰레기가 됐다는 사실이 웃겨 버스에 돌아와서도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결국 비를 피하고자 꺼낸 것은 부산에서 가져온 연약한 우양산이었다. 역시나 인생은 모를 일이다.
부산에 들어서니 태풍이 더욱 거세졌다. 늘 붐비던 지하철엔 아무도 없고, 타려고 하면 매번 놓치던 버스를 한 번에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버스가 날아가진 않겠지, 같은 또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태풍 앞에 버스가 날아가지 않는다면, 나도 잘 살 수 있겠지, 앞으로도 잘 살아야지 같은 모호한 생각을 다시금 했다. 10년 후 내가 또 어떤 삶을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다. 노란 불 앞에 또 서있게 된다면, 고민 않고 발을 떼어볼 것이다. 그건 탱고가 되어 인생의 어느 순간은 삐끗했다가도 계속 나만의 탱고를 춰나가면 되겠지. 내 인생을 위해 어디로 딛어도 춤으로 완성될 열정적인 탱고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