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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는 귤을 그만 먹고 싶은데!

내 사랑에서 비추어보는 엄마의 사랑

by 순두비 Jan 04. 2021

솜이와 유자의 기분이 어떤가, 몸 상태는 어떤가 살뜰하게 살핀다. 조금이라도 특이점을 찾았다 싶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게 간식도 챙기고, 장난감도 흔들어주고, 괜히 빗질도 한 번 더 해준다. 내가 솜이와 유자를 돌보는 모습은, 어쩌면 엄마가 나를 돌보는 방식에서 배운 게 아닐까 싶다.


어느 날 누가 내게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길 바라냐고 물었다. 단연 어디가 아픈지 말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기분이 안 좋다던가, 아프다는 말 정도만 해도 고양이를 데리고 바로 병원에 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솜이와 유자가 좀 더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내 사랑의 전형이다.


솜이와 유자의 털이 쪘다. 냥포동!솜이와 유자의 털이 쪘다. 냥포동!


새해가 되고 정확히 00시 00분에 부모님과 오빠, 솜이와 유자에게 새해 인사를 했다. 건강하자는 인사를 하고 다녔다. 인사를 들은 엄마가 “우리 윤이도 건강하자, 꼭 건강하자” 하고 계속 덧붙여 말씀하셨다. 솜이와 유자가 내 곁에 더 오래오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강을 기원했는데, 엄마도 내게 꼭 건강하자고 여러 번 말씀해주셨다.




최근 나는 또 병원에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얘길 들었고, 그런 말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는 나를 저지한다. 몸이 안 좋을 때면 기도도 해보고 신을 미워도 해보고, 나는 몸부림친다. 불안은 아주 짧은 호흡으로 매번 새롭게 나를 엄습해와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저녁을 먹고 귤을 하나 까먹었다. 역시나 꽝. 내가 쥐는 귤은 다 맛이 없다. 이번 귤도 신 맛이 나서 이제 귤을 그만 먹어야지 생각했다. 엄마는 이번에 사 온 귤은 다 맛있지 않냐고 물어보셨는데, 별생각 없이 “방금 먹은 거 시던데?” 하고 답했다. 엄마는 옆에서 말없이 귤을 까서 내 손에 쥐어주셨다. 그걸 먹었다. 말없이 받아먹으니 엄마가 또 귤을 까서 주셨다. 그렇게 몇 번이나 더 먹었다.


엄마가 준 귤은 달았다. 엄마는 신 귤 속에서도 단맛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으셨던 걸까. 하나만 먹고서 그 소쿠리의 귤이 다 신 것처럼 먹기를 그만둔 내게 자꾸 귤을 까서 쥐어주셨다. 안 먹겠다고 하니 한두 개를 떼서 꼭 입에 넣어주신다. 엄마는 나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엄마가 내게 보여주는 사랑은 전부 최고의 것이다.


건강이 나빠지고 은연중에 나쁜 생각이 스며들 때쯤, 그것이 나를 잡아 삼키려 할 때 엄마는 더 바빠진다. 자꾸 무언가를 해주시려 한다. 불안에 떨 때는 하루 종일 대추를 달여서 따뜻한 대추차를 주셨고, 요번처럼 하혈을 할 땐 외할머니께 물어서 알아낸 측백나무 잎을 달여 주셨다. 엄마는 내게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려 더 부지런히 움직이신다. 엄마는 그저 “엄마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야”라고 했다. 엄마의 사랑으로 여태 살아온 나를 떠올리면,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아끼고 살아야 할 것만 같다.


나는 공감 능력이 좋은 편이라 믿어왔고, 그래서 감히 내리사랑의 무게쯤은 알 것이라고 여겼다. 내가 솜이와 유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엄마도 나를 사랑하는 거겠지, 그 정도로 추측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내가 엄마의 딸로 산 것이 오래될수록 사랑의 깊이를 모르겠다.


한 번은 난소에 있던 혹이 절로 터졌고 복강 내에 피가 고였다. 나는 저혈압으로 쓰러졌고, 그 길로 병원에 실려갔다. 심장에 쇼크가 올 수도 있고, 수술을 해야 하니 빨리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아빠와 엄마는 새벽 2시에 부산에서 차를 몰고 300km도 넘는 거리의 병원을 왔다.


나는 위험한 순간을 절로 넘기고 괜찮아져서 다행히 수술을 모면했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도착한 부모님은 중환자실에 들어오며 그저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주삿바늘에 손과 발이 찔려있는 나를 보며 “많이 아팠냐”고 물어보셨다. 어떤 길을 왔는지, 어떤 심정으로 왔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를 미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알아가고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감정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 믿는다. 여러 형태의 감정을 겪고 나도 나누어주다 보니 대충은 알겠다. 특히 죽을 때까지도 모른다는 내리사랑의 뒷모습 정도는 비추어본다. 그것도 내가 숨 쉬는 것에서 깨닫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보면서 느낀다. 내가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되면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을까. 너무나도 크기에 그 속에 몸을 담근 나는 그저 짐작해보는 것이 전부인 이 사랑.


Sam Smith의 곡을 들으며, 바다에 홀로 남은 배처럼 흔들리는 날에도, 빛을 비추어 내게 길을 가르쳐주는 엄마를 떠올린다. 엄만 내게 등대이자 등대를 지키는 사람, 그리고 연약한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부디 이번 역경에서도 내가 지지 않길. 엄마가 골라주는 달디 단 귤과 쌉싸름한 측백나무 잎 차를 마시며 겨울다운 겨울이 또 한창이다. 엄마는 어둡고 추운 겨울 밤에도 빛을 비추어 내게 길을 가르쳐준다.


겨우내 듣는 () Sam smith의 곡 한 곡으로 이만 앓는 소리를 마무리해본다.


Love will guide you 'til the morning

아침이 올 때까지 사랑이 당신을 안내해줄 거예요

Lead your heart down to the bay

당신의 마음을 항구까지 이끌어 줄 거예요

Don't resist the rain and storm

비바람과 폭풍에 저항하지 말아요

I'll never leave you lost at sea

절대 당신을 바다에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I will be your lighthouse keeper

당신의 등대지기가 되어줄게요

Bring you safely home to me

당신을 집으로 안전하게 데려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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