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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이별이 데려다 놓은 이름이다.

본가를 나왔습니다.

by 순두비

'어른'은 이별이 데려다 놓은 이름이다. 어제는 엄마가 나를 낳고서 처음으로 나를 아가씨라고 칭했다.


내 방은 늘 가족들이 들락거렸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방이었는데 인형도 가득하고, 눈을 떼면 안 되는 아기처럼 모두가 나를 돌봤다. 고양이 둘에 엄마, 아빠, 오빠까지. 내가 없는 내 방에서 엄마는 어제 밤보낸 듯 했다.


유자를 데리고 본가를 나오던 날, 아무것도 모르는 유자는 이동장 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울었다.

엄마는 유자에게,

"가서도 잘 지내야 해. 엄마가 자주 보러 갈게." 그랬다.


엄마한테 장난스레

"나한테 하는 말이야?"하고 묻자 엄마는 유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시면서, "둘 다, 둘 다한테 하는 말이지." 그런다. 그러고 남편의 조수석에 유자와 같이 앉는데, 남편이 엄마의 양손을 꼭 잡고 "정윤이, 유자, 다 제가 잘 챙기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때, 나는 꽤나 정신이 없어서 유자의 울음소리, 무거운 내 눈을 신경 쓰느라 폰을 두고 온 것도 몰랐다. 유자가 떠나는 걸 차마 보지 못하던 오빠가, 내 폰을 두고 갔다며 남편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엄마는 다급하게 나의 폰을 가지러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왔다. 그러고 차로 다가오는 엄마의 뺨은 이상하게 반짝였다. 옅은 물기가 햇빛에 반짝이고, 햇빛 아래 오래 서있었던 사람처럼 볼이 빨개서는. 그때부터는 엄마에게 울지 말라며 말하는 내게도 햇살이 비쳤다. 엄마를 똑 닮아서 볼록한 뺨을 탄 눈물은 한 번에 떨어지지 못하고, 어렵사리 턱끝까지 닿았다. 차 밖에서는 소녀 같은 엄마가 나를 보며 울고. 눈꺼풀이 불어 나는 눈을 뜨지 못했지만 남은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그 밤, 눈이 침침해서 카톡 같은 건 길게 쓰지 못하겠던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다. "학교 기숙사에 너를 내려주고 오던 그때 같아." "남편도, 유자도, 시댁도 잘 챙기고. 다정하고 따뜻한 아가씨가 되렴. " 엄마 곁을 떠나는 날, 엄마에게서도 내가 조금 자랐나 보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울음을 삼키고도 걸어 나왔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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