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살아가기 위한 질문들

당신의 '나'를 찾고 싶다면

by 정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부쩍 다시 고민하고 있다. 운 좋게도 방황하던 시절, 친한 언니가 내게 했던 질문 하나가 동아줄이 되어 지금의 삶을 끌어당길 수 있었다.


“정윤이는 5년 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면 바로 말해줘.”

그때 나는 반사적으로 ‘월에 얼마를 벌고 싶다’, ‘건강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장황한 말들을 떠올렸다.

image.png 출처: 핀터레스트


하지만 그것을 ‘이미지’로 바꾸려 하니, 갑자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떠오른 것은 아침의 컴퓨터 앞, 커피 한 잔, 그리고 곁을 지키는 고양이들의 모습이었다. 고양이들을 사무실에 데려갈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아마도 그 공간은 집일 것이다.


그 삶을 살기 위해 나는 몇 번의 큰 용기를 내야 했다. 퇴사할 용기, 가난해질 용기, 자유인지 방종인지 모를 세계로 걸어 들어갈 용기. ‘몇 번의 용기’라 적었지만, 사실은 삶을 통째로 통과해야 하는 거대한 결단들이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있었다. 하지만 계기만으로 모든 어려움을 버틸 수는 없다. 용기를 낼 때마다 오히려 ‘나의 나’를 더 사랑하게 됐다. 하루 이틀만 지나도 엊그제 떨고 있던 나를 돌아보게 되고, 지금의 결정을 내일의 내가 얼마나 고마워할지 느껴졌던 것이다.


내일의 나에게 보내는 사랑. 어제의 나를 돌아보는 사랑. 그리고 그 사이에서 오늘을 지탱하고 있는 나. 도피하듯 어제를 바라보거나, 피신하듯 내일을 기대하던 우울했던 시절의 나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문득,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부터 떠올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가족과 ㅇㅇ하는 나’, ‘유자와 ㅇㅇ하는 나’처럼.
그런 상상은 따뜻하지만, 그것들이 온전히 ‘나의 욕망’인지 의심스러웠다. 아닐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 중 많은 것들은 사회나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들이 스며든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다정함이 그것이 마치 내 욕망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미 나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던 나”가 사실은 ‘남을 돕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종착지였음을 깨닫고 20대를 헤맸던 사람이다. 그런 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로지 ‘나의 나’를 꺼내보아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그러다 도움이 되었던 질문들이 있어 공유해 본다.


1.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상상을 했다면, 그들을 하나씩 지워보자.

이 사람이 없어도 나는 이 습관을 유지할까?

이 사람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싶을까?


관계가 지워진 자리에서 남는 것은 진짜 나의 욕망이었다.


2. 반응 말고, ‘나의 움직임’을 떠올려보자.

우리가 하는 행동의 상당수는 타인에 대한 반응이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보았다.


Q. 오늘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한 행동은 무엇일까?

커피를 내린 것, 특이한 이미지를 찾아 아카이빙한 것,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반응을 지우고 남은 자리에는 나의 좋아하는 것만 남았다.


3. 내가 쓴 문장에서 나를 찾기.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쓴 글 중, 정말 ‘내 마음에서 비롯된 문장’을 골라보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 문장이었다.

"내가 편승한 모든 구습과 이별을 고할 때가 왔다.

나는 나와 헤어짐으로써 나를 재편할 것이다.

나는 나를 새로 편성할 수 있음을 자각한다.

나의 나여, 나의 나여. "


문장을 고르는 일은 나를 고르는 일이기도 했다.


4. 마지막 질문. ‘아무도 모르는 상태의 나’를 떠올려보기.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글을 쓸까?

어떤 직업을 선택할까?

어떤 시간에 자고 일어날까?

어떤 이름을 쓸까?


나는 아침 5시, 춥지 않다면 그 시간에 일어나고 싶었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모아두는 삶. 하얗고 까만 옷, 단정한 머리. 산뜻한 식사로 하루를 시작하고, 반드시 낮잠을 자고 싶은 사람. 이름은 본명인 정윤 그대로. 그리고 직업은—


어딘가에 속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나누며 떠도는 방랑자.


그렇게 ‘관계가 지워진 나’를 떠올리고 나니, 비로소 확실해졌다. 나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며, 그렇기에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방랑자가 되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생기기도 했다. 내 글을 읽어주는 여러분의 곁에 가서 닿고 싶어서다. 나의 글을 읽고 앙상한 손에 용기를 쥐고 간다는 그 마음이, 사실은 '나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첫인상이란 걸,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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