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하고 멸렬한
나의 나도 어떤 삶을 살아오던 중이었다. 지질맞게도 하나의 일을 시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마무리는 끝나도 끝나지 않아 질척였다. 뭉근한 나의 사고는 다른 것으로 확실히 몸을 옮겨간 적도 없었다.
고맙게도, 이럼에도 나의 내가 써낸 글을 읽는 친구들은 내 글을 두고 한 번에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했었다. 그럴 때면, 빈곤한 마음으로 살아낸 하루가 쉽사리 들키는게 싫어서라곤 말하지 못했다. 읽기 어렵게 쓴 거라고. 내 마음은, 그 틈으로 겨우 흘러나온 나의 글은 내게도 어려워서 한 번에 써내기가 어렵다. 문장을 쓰고 지우고, 커서 한 칸의 간격이 나아가기 위해 사전 하나를 보는 것 같다.
모르는 말, 그래서 모르는 문화, 모르는 삶. 여행의 묘미는 내가 타자가 되는 것에 있으면서도 거기서 따라오는 공포에 있다. 매번. 몇 번 떠나보지 않았지만, 어떤 나라에 머무는 동안에 꼭 하는 생각이 있다. 이 곳에 살고 싶다-, 다시 말해, 처음 겪는 이 어려움과 낯선 감정들을 '이곳의 삶'으로 치환해버리고 싶단 속뜻이 있었다.
예전의 나는 타자가 되기 무서워 어떤 삶을 포기해야 했지만, 타자가 되고 싶은 오늘에서는 지리한 나의 나를 다잡을 길이 없다는 걸 알고야 말았다. 새로운 걸 느끼고 보는 동안, 나는 수없이 살아온 내 생의 첫날부터 오늘까지의 모든 내가, 나의 내가 나를 타자로 만들지 않는다는 걸.
나는 나를 이렇게 놓지 못한다. 나는 나의 나로서만 있어야 한다. 이렇게 지질하고 질척이는 나의 발에 채이도록 밀려오는 감정은, 나의 나를 사랑하는 길로 걷는 것만이 끝까지 몸을 옮겨가야할 곳임을 말한다.
아아, 구제할 수 없는 나의 나여. 내게 숨기지 않는 나의 모습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겠구나.
번외.
프랑스를 방문한 동안, 루브르 박물관에 가려고 했었다. 크리스마스, 연말 - 연초까지 이어지는 이 무시무시한 연휴를 알지 못하고 안일했던 나는 박물관의 입장권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 오르세 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흘러가는 나의 삶. 큰 돈을 들여서 (다시 방문하지 않을 수도 있는) 여행을 하면서도 계획이 없는 나. 환경이 달라지거나, 큰 돈을 쓰게 되면 좀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나는 나에게 없었다. 아무튼, 계획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을 그럭저럭 받아들이게 된다. 발길 닿는대로 걸어서 들어가다 보니, 붉은 벽면에 걸려 있는 이 남자의 초상을 보았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절망하는 남자>를 보고선, 나는 그가 절망했다고 느끼진 않았다. 어떤 사실을 알아챈 것 - 그 뒤에 절망이 따라올 수는 있지만 -이 그에게 놀라움을 첫 번째로 선사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낭만주의가 가득하던 시대,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그린 쿠르베는 나보다 더 '나의 나'를 목도한 사람이다.
그림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쿠르베는, 세월을 지나와 벽에 걸린 채 우리에게 묻는다. 나 자신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마주한 자신의 감정은 어떠한가. 절망을 한 쿠르베가 어떤 이유로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림에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은 '나는, 나를 바라봄으로써 절망하고 또 놀랐다.' 라는 자기 의식에 있을 것이다.
근거 없는 고통도 없고, 의미 없는 시간도 없는 것이라 믿으며 지나왔지만 실은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은 이 시대에 딱 맞는 사회인의 생각이다. 무의미함을 조금도 참지 못하는 것, 모든 것에 의미를 더함으로써 더 가치있다고 여겨지고 싶은 마음이 팽배했을 지도 모르겠다.
갖은 서사를 부여하며 내가 지나온 시간과 역사를 부연해대던 때가 있었다. 설명하고, 정리하고, 이름 붙이고, 서사를 만들어내지만 이런 포장으로 본질적인 감정은 해소하기가 어렵다. 다만 정직하게 견뎌질 뿐,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보내온 시간을 안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항상 미적지근한 것이 있다. 내 생은 단편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아직 상영중이므로.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나의 나를 끈질기게, "악착"같이 잡고서 천천히 가봐야겠다. 발길이 닿는대로, 그럭저럭. 모든 게 멋질 수는 없겠지만.
계속 완독하지 못했음에도 놓지 못하는 책, 시지프신화의 첫 문장과 인상깊은 구절을 남기며 오늘도 차마 닫지 못한 글을 남긴다.
"There is but one truly serious philosophical problem, and that is suicide."
(진정으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 자살이다.)
“The absurd man says yes and his revolt is unceasing.”
(부조리한 인간은 ‘예’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반항은 멈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