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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듯 글을 쓴다

밥 먹기, 글쓰기와의 지루한 인연에 대해

by 순두비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기억도 안나는 어린 날부터였을 것이다.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부터 밥을 먹기 시작하는 것처럼, 나의 글쓴 이력도 그렇다. 본격적으로 글을 쓴 것은 아마 고시공부를 관두고 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교를 진학할 때까지도 나는 25살쯤엔 외교관이 되어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를 떠올려보면, 어느 날 쓰러져 학기를 쉬게 되었을 때? 아니면 실력도 없던 내가 운이 좋아 꽤나 유명한 대학을 합격하게 되었을 때? 사실 잘 모르겠다.


부산의 어느 작은 동네의 학교에서 나는 소위 공부깨나 잘한다고 불리던 학생이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내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늦은 밤, 배가 출항하는 새벽 어느 시간까지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했다. 내게 공부란 '노력'으로 더 잘할 수 있는 것이었으며, 나는 그 노력을 투자하여 꽤나 괜찮은 성과를 거둔 것이다. 내가 투입한 만큼의 결과라, 얼마나 이상적인가.


이상적인 결과를 받는 만큼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나의 생각은 공고히 되어갔다. 학생일 시절엔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나의 세상도 잘 풀릴 줄 알았던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건, 평생 꿈에 그려오던 외교관이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학원 앞에 가서 줄을 섰다. 전날 밤엔 학원에서 칠 모의고사를 준비하며 늦게 잤지만, 이른 아침에 줄을 서서 순번표를 받지 않으면 수업 중에 좋은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원 앞에 가서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으면 그 길로 독서실을 가서 예습과 복습을 했다. 정말 이상했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나는 늘 제자리를 맴돌았다. 잠을 줄여가며 다한 나의 노력과 그에 대한 결과가 예상과 달랐다. 그 무렵,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랬는지 자취방이 빙그르르 돌더니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곤 눈을 떴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눈을 떠보니 저녁이었다.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다. 혼자 쓰러졌다가 깨어났단 사실에 세상에게 섭섭했던 건지,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걸음인 나의 모의고사 성적이 참담한 건지 그 날 그렇게도 많이 울었다.


노력만 하면 다 된다며 그간 내가 쌓아온 믿음과 함께 20년도 더 된 나의 세상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폐허가 된 내 세상에서 나오기 무서웠다. 그로부터 1년간 방황했다. 노력만 하면 당연히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 믿던 것에 내 전부를 쏟았지만 나는 그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야속했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납득하기까지가 1년.


그 1년간 글을 썼다. 내용은 뻔했다. '나는 왜 사는가.'


나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도 고민한 철학적 사유의 시간이면 좋았으련만 그렇진 않았다. 욕을 했다.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싶었지만, 폐허를 지키는 수문장이 된 나를 욕하기엔 안쓰러웠다. 이렇게 내버려 두실 거면 차라리 고통 없이 죽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다. 이런 나의 상태를 아는 것인지 엄마는 더욱 열심히 나를 위해 기도했다. 혼자 살고 있는 나를 걱정하며 2주에 한 번은 꼭 끼니를 거르지 말라며 택배 박스에 반찬을 꽉 채워 보냈다. 그런 엄마의 기도 덕인지 더 오랜 방황으로 이어지지도, 죽어버릴 용기도 얻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제자리로 돌아와 보니 무너져있던 나의 폐허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심어준 싹이 자라 어느 정도 볼만한 곳이 되어있었다. 주변 사람들 덕에 부지한 나의 목숨이지만 그 애정이 고마웠다.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진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어쨌든 '잘' 살아보잔 의미로 글을 또 썼다. 살기 위해 밥을 먹는 것처럼, 밥을 먹으려면 밥을 지어야 하는 것처럼, 글을 지으면 더 잘 살아보려고 하게 된다. 나와 글쓰기의 지독한 인연은 매일 먹는 밥처럼 내내 이어져가고 있다.



밥을 짓듯 글을 쓴다. 하루 세끼 꼬박 밥을 챙겨 먹는 나는 식성이 좋은 편은 아니다. 으레 습관적으로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한참을 씹으면 단맛이 난다고 한다. 뜨거워서 오래 씹지 못한 탓인지 내 인생이 달았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목구멍엔 단맛이 올라오는 것 같다.


뜸을 들인다. 들이쉬고 내쉬는 짧은 열이 흩어져 세상에 퍼진다. 따뜻한 밥이 뜸 드는 그 시간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기다린다. 어제 먹다가 남은 밥은 더 오래 먹어보겠다고 냉동실에 넣었는데. 쓸모도 없는 찬밥 같은 신세라고들 한다. 그게 어쩌면 나의 모습일 것이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찬밥 같던 내 신세를 떠올린다. 냉장고를 뒤적이다 넣어두었던 한 때 따뜻했던 밥을 꺼내 먹는다. 숨 한 줌은 크게 빠져나가고, 밥은 한 입 가득 들어와 오늘 저녁엔 빈 틈이 없다. 겨우 먹고 산다. 겨우 쓰고 산다. 그래도 따뜻한 밥은 속을 채워주니까, 나는 매일 밥을 짓듯 글을 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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