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시간과 고양이의 하루

퇴준생의 속내

by 정윤

한 번은 아주 신기한 동승을 한 적이 있었다. 친구 집에 가서 자고 아침에 길을 나서려는데, 친구네와 친하게 지내던 한 부녀가 마침 서울로 나가는 길이라며 나를 기꺼이 태워주셨다.


서울로 가는 차 안에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던 아이는 아주 궁금한 것이 많아 보였고 아이의 아빠는 아이의 호기심에 아주 멋진 답변을 해주었다. 그중에서 기억나는 대화는 "아빠, 우리도 고양이 키우자."

"안돼. 우리보다 일찍 죽잖아."

"왜? 고양이는 왜 일찍 죽어?"


이런 질문에 잠시 정적이 흐르다 이내 아이의 아빠는 "세포 분열을 빨리 하기 때문이야."라는 상상치도 못한 답을 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조용해졌다. 알아들었을지 못했을지, 그리고 그 아이에게 그 말이 어떻게 남았는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 말은 그저 그 상황을 지나쳐갔고 아이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그 말 내게 흘러 고였다.


나의 맥은 평소에 약하게 뛰지만 자주 빨리 뛴다. 그럴 때만 손목과 목 사이의 혈관이 피부를 뚫고 나오는 것 같다. 평소엔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가 이런 존재감을 드러낼 때면 가쁜 숨과 함께 시간을 알리는 알람이 들리는 것 같다. 초조하기 때문에 시간도 바삐 달리는 것일까.


자려는 것은 아니고요

고양이가 누워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맥이 인간보단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강 내가 한번 쉴 때 고양이는 1.5~2번은 내쉬는 것 같다. 리고 내 숨이 가쁠 때 시간이 흐르는 속도만큼 아이들의 시간도 빨리 갈까 봐 걱정이 되는 것이다. 인간에 비해 짧은 시간을 사는 고양이 세계의 시간을 부정하지도 않지만 솜이와 유자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순리라는 무거운 이름 앞에 설 때, 나는 더욱 조급해진다. 가끔 프로젝트 사이에 쉬는 텀이 생겨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 사무실에서의 시간이 지나갈 때, 고양이 세상의 하루가 저문다.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고양이의 일주일이 지난다. 내 하루가 고양이에겐 이틀이자 사흘, 그 이상일 수도 있다. 마치 어떤 전래동화 속 신선과 인간의 세계 같은 간극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 세상이 신선 세상이란 것은 아니다.)


나는 출근을 하기 싫어하는 평범하면서도 대책이 없어 매일 출근 중인 직장인이지만,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겠다고 자주 선언하는 내게는 속내가 있다. 고양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다. 누군가는 그런 내가 말만 늘어놓는 퇴준생, 허황된 말이나 하는 사람으로 보겠지만 내 진심과 절박함은 저무는 하루 속에 굳어진다.


까만 밤, 매일 같은 길을 걷는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운 까닭은 나의 별 것 없는 하루에 나만 기다린 내 고양이들의 귀한 시간까지 더해진 값이라 그렇다.


어떤 반려동물과 함께 살든,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너무나도 뻔하지만 우리는 언제라도 이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는 나의 고양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 고양이 별로 돌아갔을 때, 짧고도 긴 인간 세상의 시간이 즐겁길 바라는 것, 모든 집사들이 바라는 소박한 일일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러하며, 곧이어 고양이의 사랑이 나를 이끌어 결단력 있는 내가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언제 오냐아악!!!!!!(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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