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고양이가 가만히 나를 봐주는 시간을 좋아하기도 한다. 아주 활발한 조카를 키우고 있는 사촌언니가 집에 방문했을 때, 가만히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윤아, 정말.... 너는 돌 같구나." 세상에 이런 칭찬이 다 있나. 산 같은 사람은 들어봤어도 돌 같은 사람이라니!
벽을 보고 있솜
나는 가급적 가만히 있는 것이지 멈춘 사람은 아니라 엄연히는 돌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 이번 글은 돌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고, 멈추어 있는 순간에 대한 글이다. 고양이는 개와 다르다. 일상 속에 가만히 있는 시간들이 꽤나 있다. 고양이 집사라면 모두 아는 사실인데, 고양이는 가끔씩 허공을 멍하니 보고 있다. 그래서 고양이가 사실은 귀신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뭐, 나는 보지 못하는 내 뒤의 귀신을 대신 보고 있는 것이라면 그도 고마운 일이다. 잘 감시해주면 좋겠다.
최근 알게 된 사실인데 귀신을 보는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허공의 먼지를 보는 것이거나 그쪽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고양이의 청력은 아주 좋다. 노랫소리와 TV 소리로 가득 찬 인간 세상과는 다르다. 아주 작은 새끼 집거미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도 용케 알아듣고는 마중을 나가 있는 솜이와 유자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그 세계를 상상하고 있는 것이라곤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다. 하지만,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 이런 반신반의한 사실은 아주 설레는 영감을 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듣고 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서 그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생명이라니. 고등동물은 사실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이 많은 나는 상상도 많이 하는 편이다. 그것이 새로운 시나리오를 쓰거나, 캐릭터를 잡을 때 도움이 되곤 한다. 아무 말과 아무런 상상을 시작으로 발전해나가서 하나의 이야기가 될 때가 있는 것이다.
솜이와 유자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우리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되었다. 지금은 아주 끈적하게 엮여있지만서도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사랑하게 될 운명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같은 곳에서 다른 상상을 하며 고요한 방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고양이들의 상상을 방해하는 것은 실례가 아니며 고양이들 역시 그렇다. 나를 깨우면 그저 상상의 시간이 끝난 것일 뿐이다. 창의력을 요구하는 삶에 고양이를 끼얹는다는 것은 살아보지 못한 세상에 함께 떠날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그것도 매일!
"휴일에 뭐해?"
"집에만 있었어!"
친구들이 묻는 말에 늘 같은 대답을 하면, 이젠 다들 그러려니 한다. 고양이들과 있었겠거니. 사실은 고양이가 보는 크고 작은 것들을 함께 보고 싶어 애쓰는 중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렇게 나의 낭만을 채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구름이 잔뜩 끼었던 요 며칠, 솜이가 열렬히 기다리는 평범한 햇살과 유자가 좋아하는 창밖의 날아가는 새들을 함께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갖은 상상을 하고 있노라고.
창고 속에서 무얼 보고 이러냐 묻고 싶은데, 솜이 유자가 이게 뭐냐고 이미 묻고 있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