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바탕에 고양이라는 세 글자를 써놓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래도 우리 고양이들이 내게 준 기억이 상냥한 것들이라 그럴 것이다. 글을 처음으로 연재할 때는 내 마음이 힘들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내 처지를 하소연이나 할 요량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오게 되었고, 아이들과 있을 때 밝아지는 나의 마음을 평소 차분히 가라앉아있는 나의 상태에 섞어 묻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고양이 세계의 시간이라는 주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고양이와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시름이 없다. 그래서 내게 고양이 세계의 시간이란, 솜이와 유자가 보내는 하루의 시간이기도 하면서 솜이와 유자가 내게 선사한 나의 행복한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양이가 좋은 것들로만 가득 채워놓은 세상에 내가 초대받았다.
나는 유쾌한 사람이란 평을 들으면서도 글을 쓸 땐 그렇지 않았다. 글은 바닥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흙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의 한숨이었다. 깊게 들이마시고 한 번에 내뱉듯 풀어놓으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래서 내가 연재한 글들은 빛이 들지 않는 아주 깊은 곳에서 끌어져 올린 것들로, 밝은 분위기를 띈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고양이를 글에 얹어두고 나니 나의 글도 환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 덕에 웃음으로 채워지는 하루와 거기에서 떨어져 나온 행복한 기억이 차분히 가라앉은 나의 글에 넘실거리는 파도가 되어 생기를 채워주는 것이다.
누군들 살면서 힘든 시간이 없을까. 모두가 힘든 시간을 겪기에 내가 겪어온 힘든 시간과 우울했던 내 과거가 특별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그땐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누구나 이 정도의 고난은 가지고 사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의 위로도 그때의 나를 구해줄 수 없었다. 그 사람도 힘든 걸 감추고 살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고양이들이 초대한 우연한 세계는 달랐다. 거창한 위로는 없었다. 다만 똑같은 일상인데 하루를 다르게 채워주었다. 웃을 일이 더 많아졌으며, 똑같던 하루를 다르게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내게 고양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새로운 세계로의 발돋움이었고 새로운 시간으로의 초대였다. 그곳에서 온전한 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살아보려는 내가 있었다. 걱정을 조금 끊어볼 수 있었고 불안함에 떨던 시간을 고양이들 덕에 조금이나마 떨쳐볼 수 있었으며, 이렇게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된 온갖 나쁜 것들은 내 어두운 세계에 금을 만들어 주었다.
완전하고 완벽한 삶을 살고 싶었던 어린 내가 감당하지 못했던 세상에는 그렇게 빛이 들어왔다.
모든 것에는 금이 가 있다. 빛은 거기로 들어온다. - 레너드 코헨
잘 해내지 못한 나를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잘해보려 애쓴 나를 안타깝게 여겨보려고도 한다. 매일 같이 오르는 캣타워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유자가 다리를 한 번 핥고서 또다시 오르는 것처럼, 제 키보다 수십 배는 큰 장식장을 오르기 위해 몇 번이나 뛰어오르는 솜이처럼 나의 실수를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마침내!
고양이 세계는 그런 곳이다. 팍팍한 세상에서 당신이 잠시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며,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내어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다녀온 이 세상에 당신도 와볼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초대장을 전달하고자 한다. 우연히 만난 당신의 묘연에 이끌려 가다 보면 어떤 고양이 신선이 당신을 위해 만들어둔 환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