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울 Oct 23. 2021

자존감 = 미터기

속도 내는 걸 두려워하지 맙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 자체가 우문이다. 높은 자존감 또한 행복처럼 하나의 목표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뇌의 최종 미션을 기억하는가? 그렇다. 생존과 번식. 자존감마저도 그 미션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행복은 칭찬 스티커라면, 자존감은 미터기다(Leary & Baumeister, 2000). 우리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최종 미션을 향해 얼마나 잘 달려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미터기.



이때,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가장 중요한 행동은 다른 사람과 관계 맺기다. 따라서 자존감 미터기의 바늘은 본인을 스스로 얼마나 가치 있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오르내리지 않는다. 자존감 미터기의 바늘을 움직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인연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비슷하게 들리지만, 둘은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절을 예상한다면 자존감이 낮고, 수용을 예상한다면 자존감이 높다.


Anthony 외(2007)의 연구 결과는 이 이론을 지지한다. 이 연구의 참가자들은 본인의 성격에 대한 설문조사에 응답했다. 이후 그 응답을 바탕으로 특정 동아리의 멤버들이 자신들을 평가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참가자들 중 절반은 확실하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고(예를 들면, “이 사람의 설문조사 응답을 보면서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이 사람은 우리랑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나머지는 모호하게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예를 들면, “서로 조금 더 친해지고 나면 우리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이후 참가자들은 해당 동아리에 얼마나 가입하고 싶은지에 대해 대답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자존감이 높은 참가자들은 호의적인 피드백이 모호하든 확실하든, 비슷하게 높은 가입 의향을 보였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참가자들은 모호하게 호의적인 피드백을 받은 경우에 확연히 낮은 가입 의향을 나타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본인이 그렇게까지 매력적일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중에 확실하게 호의적인 피드백을 받아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던 사람들만 동아리에 기꺼이 가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세요.',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맙시다.'와 같은 자존감 높이기 꿀팁들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존감 미터기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의 갈망을 인정하고, 타인에게 거절받는 것에 대한 나의 두려움 또한 인정하고, 그러한 두려움을 감내하면서 타인에게 접근하는 걸 연습해보고, 그러면서 점점 거절에 대한 면역력을 쌓아가는 방법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여기서 잠깐 좋은 소식. 자존감 미터기의 바늘이 아무리 올라간들, 속도위반에 그 어떠한 과태료도 부과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행복이나 높은 자존감이 우리의 목표라고 보이게끔 만드는 뿌연 색안경을 벗어던졌다. 다행히 시야가 조금 더 깨끗해졌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이제 다음 색안경을 벗을 차례다.


Anthony, D. B., Wood, J. V., & Holmes, J. G. (2007). Testing sociometer theory: Self-esteem and the importance of acceptance for social decision-making.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3(3), 425-432. doi:10.1016/j.jesp.2006.03.002


Leary, M. R., & Baumeister, R. F. (2000). The nature and function of self-esteem: Sociometer theory.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Volume 32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1-62. doi:10.1016/s0065-2601(00)80003-9


Leary, M. R. (2005). Sociometer theory and the pursuit of relational value: Getting to the root of self-esteem. European Review of Social Psychology, 16(1), 75-111. doi:10.1080/10463280540000007

이전 09화 눈칫밥 권하는 사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