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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울 Oct 22. 2021

눈칫밥 권하는 사회.

부작용: 소화불량, 그리고 불행.

우리 뇌에 있는 행복 버튼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번뜩 켜진다. 그렇다면, 한국처럼 의리와 정()을 중요시하는 집단주의 사회는 행복에 최적화된 환경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한국은 늘 행복지수에서 하위권을 차지할까?


서은국 교수님의 저서 『행복의 기원』에는 이 모순적 현상이 잘 설명되어있다. 우리는 '중요하다'와 '좋다'의 의미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무언가가 '중요하다'는 건, 그만큼 우리가 그것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뮤지션에게는 마이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 마이크가 있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그 마이크가 좋은 마이크여야지만 몰입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만약 마이크가 계속 지지직거린다면? 노래하는 도중에 갑자기 꺼진다면? 그 뮤지션은 관객 앞에서 돌연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즉,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우리가 그만큼 그것에 민감하다는 뜻이다. 대인관계가 수월해야지 우리는 행복에 가까워지고, 반대로 대인관계가 어렵다면 우리는 불행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한국과 같은 집단주의 문화에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지기란 참 쉽지 않다. 나와 잘 맞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즐겁게 지내는 시간보다 어떠한 목적에 의한 만남(e.g. 회사 회식) 또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만남(e.g. 인스타 사진 업로드를 위한 예쁜 카페 방문)이 우리의 일상을 꽉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마이웨이'하는 사람은 비아냥 받고 무시당하기에 우리는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한국의 개인주의 지수는 18로 하위권에 속하며, 심지어 같은 동양권 국가인 일본보다도 훨씬 낮다.


Baldwin 외(1990)의 연구를 보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타격이 큰지 알 수 있다. 이 연구의 참가자는 대학원생들이었다. 그들은 본인이 낸 연구 아이디어를 스스로 평가하도록 지시받았다. 그런데 그중 일부가 평가 전에 보고 있던 컴퓨터 화면에는, 지도교수가 찌푸리고 있는 사진이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짧은 찰나의 시간 동안 스쳐 지나갔다.



결과는 예상과 같았다. 교수의 사진을 본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본인의 아이디어를 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중요한 사람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보다는, 나보다 권위가 높은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결국, 심리적 자유감이 높은 개인주의 문화에서보다 남을 지나치게 신경 써야 하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행복 수준이 더 낮은 건 모순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몇 년 간 우리나라에서 '자존감'이 아주 핫한 토픽이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뭘 해야 되는지 각종 팁들이 즐비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존감도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그 색안경도 함께 벗어보자.


서은국. (2014). 행복의 기원 (pp. 162-170). 경기: 21세기북스.


Baldwin, M. W., Carrell, S. E., & Lopez, D. F. (1990). Priming relationship schemas: My advisor and the pope are watching me from the back of my mind.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26(5), 435-454. doi:10.1016/0022-1031(90)90068-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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