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다. 우리는 스스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인공지능과 같은 놀라운 발명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고차원의 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동물과 다를 것이 딱히 없다. 왜냐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뇌는 결국 똑같은 미션을 향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미션은 바로, 생존과 번식이다.
이 사실을 믿기 어려울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는 다른 동물, 예를 들어 저기 옆에서 하염없이 날아다니는 초파리와는 확실히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런 모습으로 살게 된지는 정말로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서은국 교수님의 수업을 처음으로 들었던 '심리학개론' 수업에서 중간고사 문제로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인류 진화의 시간을 1년으로 압축한다면, 그중 인간이 문명생활을 한 시간은 _______이다."
빈칸을 채우는 주관식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를 맞힌 몇 안 되는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정답은 2시간이다. 365일 중에 달랑 2시간. 나머지 364일 22시간 동안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름없이 식량 쟁취와 짝짓기에 몰두하며 살았다(서은국, 2014). 이 시절 동안 혼자 있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그러니 우리 뇌는 자꾸 우리를 부추겼다.
'저 사람들이랑 친해지렴! 같이 사냥하면 굶어 죽지 않을 수 있어!'
'저 남자에게 다가가렴! 저 남자라면 너와 너의 아이들을 짐승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어!'
그리고 말을 잘 따르면, 우리의 뇌는 쾌락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우리가 경험하게 해 주었다. 일종의 칭찬 스티커인 셈이다.
'잘했어. 기분 좋지? 내 말만 따르면 넌 계속 살아남아서 후손도 남길 수 있으니깐 앞으로도 정신 차려.'
그런데, 364일 22시간 동안 이랬던 우리의 뇌가 단 2시간 만에 바뀌었을까? 아니. 우리의 뇌는 그대로다. 여전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가가라고 자꾸 우리를 부추긴다. 그걸 마지못해 하는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이고, 그걸 기꺼이 하는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이다. 어쨌든 얼마나 내향적이건 외향적이건 우리의 뇌는 사람을 지독히 사랑한다.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금방 죽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우리에게는 음식이 넘쳐날 만큼 있고, 피해야 할 짐승도 없지만 말이다.
반대로, 사람을 피하거나 사람한테 버림받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뇌는 그런 상황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에게 벌을 주고자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시킨다. 슬픔, 분노, 죄책감...
한마디로 말해, 행복이라는 감정은 우리의 뇌에게 목표가 아니라 도구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에서처럼, 행복이라는 빵 부스러기를 따라가면 생존과 번식이라는 멋진 과자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도록 우리의 뇌가 잘 설계해놓은 것이다.
도구를 목표로 착각하면 일이 안 풀리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해지기로 마음을 굳게 먹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죽도록 노력해도 기만 빨릴 뿐.
그런데, 이 모든 걸 꽁꽁 숨기고 있었던 우리의 뇌가 갑자기 야속해진다. 왜 우리는 여태까지 도구에 불과한 행복을 목표로 오해해왔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