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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 넣기 전에 비워야 했던 것들

보스턴 생활기 2편

by 윤슬

짐 싸기 지옥과 채워 넣을 준비


집 주소가 정해지자, 곧바로 짐 싸기 지옥이 시작됐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집을 빼야 했기에 이삿짐을 정리해야 했다. 구체적으로는 짐을 네 가지로 나누어야 했다. 들고 갈 짐, 선편으로 부쳐서 두 달 뒤에 받을 짐, 항공택배로 부쳐서 바로 받을 짐, 한국에서 이사할 때 창고로 보낼 짐. 이주 선배들의 가르침은 어려웠다. 짐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계절당 옷 한두 개 정도만 챙겨라, 택배 부치지 말고 들고만 올 정도로 줄여야 한다 등등. 결과적으로는 정확히 그 반대가 되었다. 처음에는 남편은 출근하지만 나는 규칙적으로 가는 곳이 없으니 내 옷은 거의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짐을 싸면서 만약에병에 걸렸고 이런 일이 생길 때는 이 옷이, 저런 일은 저 옷이 필요하다며 스스로와 싸웠다. 이 싸움에서 욕심만 살아남았고 짐은 아주 불어났다. 옷도 옷이지만 생활용품도 문제였다. 매일 쓰지 않더라도 특정 상황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너무 많았다. 전기모기채와 요가매트까지 넣고 나서야 짐을 닫을 수 있었다.


인터스텔라처럼 짐 싸는 내게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옷은 넣어둬! 미국은 한국과 옷 입는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한국 직장인처럼 입으면 아주 차려입고 나가는 사람이 된다. 산책하러 가거나 장 보러 갈 때는 적합하지 않은 딱 그런 스타일. 그래서 내 이쁜 옷들은 창고에 잘 걸려있고 나중에 다시 한국으로 부칠 생각을 하면 머리가 아프다. 그에 반해 의외로 잘 챙겨 온 것은 전기매트, 이불, 다양한 운동복이다. 확실히 아마존으로 봐도 이불이 가성비가 안 좋아 보이고 한국 것처럼 안전하고 성능 좋은 전기매트도 찾기 어려운 것 같다. 운동복으로 말하자면 나는 매일 그것만 입고 있다.


큰 캐리어 두 개와 단프라 두 박스를 가지고 가고, 항공으로 두 상자, 선편으로 네 상자의 짐을 부쳤다. 우체국으로 들고 나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본 게임은 역시 직접 들고 가는 짐들이다. 보스턴에 밤에 도착해서 임대사무소 직원이 없기 때문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기 위해서는 시큐리티에 전화해야 한다고 안내받았다. 큰 짐 네 덩어리와 함께 치안이 안 좋다는 미국 길거리에서 밤을 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조마하다.


다음 일기에 있지만 우리는 비행기 연착으로 보스턴에 아침에 도착했다. 와서 보니 보스턴은 밤에도 학생들이 많이 다녀서 치안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비행기 연착이 문제였다.


미국 집이 생겼으니 이제 채워 넣어야 한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맥시멀리스트 같지만 그보다는 가난뱅이에 가깝다. 짐을 안 들고 가도 한국에 있는 것은 미국에 다 있으니 살 수 있고 가전이나 가구도 아마존으로 시키면 금방 온다. 비쌀 뿐이다. 그래서 호시탐탐 노린 것은 보스턴코리아의 사고팔고. 어차리 1년 쓸 것들이니 대부분의 가전, 가구들을 중고로 구하기로 했다. 보스턴은 잠깐 살다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중고장터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우리는 세 개 가구에서 소파, 의자, 책상 같은 것들을 나누어 구매했고, U-Haul에서 이사용 트럭을 빌려 가능하면 하루에 다 돌면서 물건을 픽업하기로 했다. 그중 한 집의 귀국 일정 때문에 보스턴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로 일정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우리는 도착한 당일에 바로 트럭을 운전하게 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미국에서 처음 하는 운전, 그 운전을 트럭으로 시작, 트럭 반납 시간 때문에 그날 밤 달빛 맞으며 둘이 소파와 책상 등등 나르기. 얼마나 힘들지 알았더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냥이, 차, 가족과의 이별


이사 갈 곳을 자리 잡고 난 뒤 할 일은 떠나는 곳에서의 이별이었다. 우리 집의 건장한 주인이었던 고양이, 냥이를 부모님 댁에 맡기고, 발걸음을 겨우 뗐다. 강아지라면 몰라도, 고양이가 주인에 대한 애착이 큰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집사는 분리불안이다. 미국에 데려가는 것도 잠시 고민했지만, 냥이에게는 못할 짓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안정제를 먹더라도, 14시간 동안 케이지에 갇혀 있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무엇보다 냥이는 집 앞 병원을 가는 짧은 시간조차도 케이지에 갇히는 것을 싫어했다. 내 입장에서는 데려가는 게 힘들더라도 냥이를 보지 못하고 사는 시간이 더 힘들 것 같아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냥이는 나를 1년 동안 보지 않는 것이, 케이지에 갇혀 비행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안부보다 냥이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이 부끄럽다. 집에 자리가 없다고 투덜거리던 부모님이었지만, 어느새 온 집안이 냥이 물건들로 가득 찬 것을 보면 냥이의 애교 능력치가 높거나, 나에 대한 사랑이 넘치시는 것 같다. 아마 둘 다이겠다.


3년 동안 탔던 차와도 이별했다. 첫 차이자 이돈 씨의 결과물로 산 드림카였기에 애착이 컸다. 오랫동안 나를 지켜주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 운전하고 내 차가 생기기 전에는 차에 갖는 애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차는 한편으로는 독립적이고 내밀한 공간이다. 차 문을 닫는 순간 세상과 단절되고 속마음을 독백으로 중얼거리거나 원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다음에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라디오, 노래나 스토리로 내밀한 세상을 가득 채운다. 그런 시간을 거듭하다 보면 공간과 시간에 대한 애착이 차에 대한 동료애로 흐른다. 아쉽게도 원하는 가격을 받고 동료를 보내진 못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 의지가 되는 동료가 되길.


마지막은 부모님들과의 이별이었다. 부모님들은 계속해서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어보셨다. 마무리는 당신들이 하겠으니, 짐은 그냥 대충 두고 가라고 하셨다. 못 가져간 것은 보내주면 된다고. 양가가 번갈아 집에 오셨는데 엄마, 아빠는 와서 같이 밥을 먹고 집에 돌아갔다가 갑자기 한 시간 거리를 달려 밤에 다시 오셨다. 짐에 보태라고 챙겨줄 것이 있다며 말이다. 들고 오신 짐은 별 게 아니었기에, 너무나 분명하게도 다시 오신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무뚝뚝한 K-장녀,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배웅하고 뒤돌아서는데 눈물이 났다.


두 번은 보는 것이 관례인가. 어머님, 아버님은 다른 날 오셨다가 가시면서 이게 마지막인가 했더니 출국 날 다시 오시겠다고 했다. 영 마지막 인사가 쉽지 않은 것이다. 진짜 마지막 순간에는 인사를 못 하게 되니까, 미리 해두어야 한다는 영화 속 대사가 있었던 것 같다. 어차피 다시 본다고 인사 일부분은 남겨뒀는데, 막상 출국 날은 차에 짐을 싣고 정신없이 빠진 것을 챙기느라 제대로 얼굴 볼 시간이 없었다. 출발하는 차창으로 봤는데, 아버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끝내 눈물을 훔치셨던 것 같다.


남편은 보스턴에 온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부모님께 매일 전화드린다. 연애하면서는 부모님과 그렇게 살가운 남편이 이상했다. 집에만 가면 유난히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나와, 아직도 사춘기인 것 같은 남동생과는 너무도 달랐다. 부모님과 친하게 지내는 남자에게 달라붙는 수식어는 극단적으로는 마마보이가 있다. 마마보이와 결혼하면 시월드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런 시선이야 어쨌든, 나는 부모님과 가깝고 잘 챙기는 남편을 가정에 충실하고 따뜻한 남자로 받아들이고 결혼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점이 내가 존경하는 남편의 모습들 중 하나이다. 동시에 나도 보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부모님께 잘하자. 계실 때 후회 없이 잘하자. 아낌없이 표현하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자. 그를 따라 하면서 나는 나이가 무색하게도, 내가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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