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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보다 초콜릿에 관심 있는 당신에게

보스턴 탐방기 1편

by 윤슬

보스턴 생활에 적응하고 나서 나는 여기저기 방랑자처럼 떠돈다.

그도 그럴 게 백수는 할 게 없다. 백수는 오늘도 심심하다.

차가 없기 때문에 근교까지 나가지는 못하고 보스턴 안에서 전철 여행을 다닌다.

체계적인 여행 계획이 잡힌 보스턴 여행자에게 추천할 만큼 자신은 없다.

나 같은 정처 없는 방랑자가 어쩌다 가보니 좋았던 곳을 남겨보려고 한다.



L.A. Burdick Handmade Chocolates


하버드를 산책할 겸 걷다가 들르기 좋은 카페이다.

주 종목은 가게 이름에서처럼 초콜릿.


보스턴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보스턴 커먼 근처에도 지점이 있지만 내가 자주 가는 하버드스퀘어에 있다.

집을 나설 때면 거주지역에서 벗어나 당일도 아니고 단시간 여행하는 느낌을 내고 싶은데,

그렇다고 또 관광객이 너무 많거나 번화한 곳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하버드로 간다.

푸릇푸릇한 나무와 어우러진 갈색 벽돌의 캠퍼스 안을 걸으면 평화롭다.

미국이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유럽의 마을 같다.


걷다 보면 당이 떨어지는데 아무 카페나 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날이 따스해서 아무 데나 앉아도 기분 좋은데 굳이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낼 이유는 없다.

오늘의 산책과 어울리는 맛을 느끼고 싶다.

그러면 나는 L.A. Burdick으로 간다.


https://maps.app.goo.gl/Dj8DLFAAbkoe4MD18


들어가면 프랑스의 어느 작은 상점에 온 것 같은 분위기에 빠져든다.

크리스마스나 장난감 가게가 생각나는 따스한 곳이다.

체리우드색의 테이블과 과하지 않은 샹들리에가 그런 분위기에 일조한다.

사람들이 늘 붐비는 탓에 환상에서 빠져나오면 은은히 가게 안에 퍼진 초콜릿 향기가 달래준다.

추천하는 메뉴는 커피에 화이트초콜릿을 추가한 화이트초코모카이다.

첫맛은 화이트초콜릿이 깊고 달콤하게 잡지만 마무리는 커피가 깔끔하게 남는다.

나는 원래 스타벅스나 다른 커피 체인점을 가서 커피모카를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다.

너무 달아서 혀가 녹아 없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커피의 쌉쌀한 느낌은 코코아 파우더 같은 단 맛에 묻혀버린다.


그래서 워낙 인기 많은 카페였음에도 화이트초코모카는 보수적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웬걸.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고급스럽고 깊은 달콤함(그들은 초콜릿에 진심이다)을 선사하면서도 커피의 풍미를 잃지 않는다.


가게 문 옆에는 생초콜릿을 조각으로 살 수 있는 카운터가 하나 더 있다.

나오기 전에 못내 아쉬워 생초콜릿도 세 조각 고른다.

생쥐 모양의 화이트초콜릿과 계속 눈이 마주쳤던 것.


가격은 결코 착하지 않다.

화이트초코모카를 디카페인, 아이스로 커스터마이징 했을 때 10불, 초콜릿 한 조각당 3불 정도씩 세 조각하여 또 10불이다.

그 값어치를 하긴 하지만, 방랑자는 보통 돈이 없으므로 이 근처를 너무 자주 산책하지는 말 것.




이미지 출처: L.A. Burdick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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