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생활기 3편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일어나 확인한 핸드폰에는 메일이 쇄도해 있었다. 에어 캐나다에서 온 연착 알림이었다. 오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는 그날 밤 출발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대한항공 직항 대신, 에어캐나다를 타고 토론토에서 환승하는 경로를 예약했다. 대한항공과 같은 가격으로 에어 캐나다에서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에어 캐나다가 에어 개나다로 불린다는 것을. 에어캐나다는 연착, 수하물 분실, 결항 중 하나라도 안 걸리면 전생에 덕을 쌓은 것이라는 후기도 늦게 보았다.
인천에서 토론토 가는 비행 편이 지연되면서 토론토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비행기도 한참 뒤로 밀렸다. 덕분에 두 시간 경유 예정이던 토론토 공항에서 일곱 시간을 보내며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부지런히 들어둔 여행자보험은 항공사가 기계 점검 사유로 비행기를 연착시키는 경우에는 보상을 받을 수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프리미엄 이코노미로 조금 더 편하게 가나 했더니, 토론토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며 결국 똑같은 신체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도착한 인천공항은 생각보다 설레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카운터에서 체크인하면서 토론토 공항에서 짐을 다시 찾은 후 맡겨야 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짐은 그냥 여행 짐이 아니라 단프라에 싼 이삿짐이다. 아찔하다. 거기다 면세점에서 산 액체 화장품은? 결국 토론토 공항에서 짐을 전부 다시 싸야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에 앉으니 조금 기분이 풀리는 듯 (아닌 듯) 했다. 좌석 자체는 생각보다도 넓었고 비즈니스랑 같은 음식을 이코노미 그릇에 담아준다고 들었던 기내식도 맛있었다. 그러나 높은 확률로 당첨되는 긴 연착을 감수할만한 좌석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비행기에서 원래 잘 못 자는 남편은 이런저런 변경에 치어 피곤했는지 곯아떨어졌고, 나는 매 기내식을 기다리며 가지고 탄 여행 애착 책을 집어 들었다. 다시 예약한다면 대한항공 직항을 선택하겠지만, 좌석이 조금 넓어졌다고 효용이 크게 바뀌기는 했다. 다들 열심히 마일리지를 모으는 데는 이유가 있나 보다. 많은 불편한 비행을 쌓아 비즈니스를 탈 날을 꿈꾸며 그렇게 경유지인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다.
진 크레이그헤드 조지의 <나의 산에서>. 비행기에서 조난을 기다리는 사람도 아니고, 왜 이 책이 여행 애착 책이 되었는지 내 마음을 모르겠다. 도시에 살던 소년이 아무 준비도 없이 조상이 살았다는 숲으로 가서 혼자 한 해를 보내는 내용이다. 시행착오 끝에, 소년은 나무에 굴을 파서 집을 만들고 숲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거나 야생 매를 잡아서 길 들이기도 하면서 숲과 하나가 된다.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나는 이 책에서 내가 사랑하는 자연의 향기를 맡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러니하지만 그의 모험이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