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루에 초록을 넣어보자

보스턴 탐방기 3편

by 윤슬

보스턴은 땅값이 그렇게 비싸면서도 자연은 지천에 있다.


어디에 살든지 걸어서 10분이면 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한국 기준으로 보면 동물원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온갖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자연 그 자체인 곳도 있다.


집 바로 근처의 공원에 질리거나, 코스에 전철을 추가하여 작은 여행 느낌을 내고 싶을 때, 찰스강을 끼고 있는 공원인 찰스 리버 에스플래나드에 간다. 에스플래나드(Esplanade)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넓게 트인 산책로를 뜻한다고 한다.


https://maps.app.goo.gl/2XxqyaCZZoogW4kg8?g_st=com.google.maps.preview.copy


관광객은 보통 보스턴 커먼으로 가는 것 같고 이 곳은 러닝을 하려는 현지인들이나, 나 같은 보스턴 방랑자들이 찾는다. 또는 하버드 의대와 제휴되어 있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근처에 있기 때문인지, 수술복 차림으로 불만 가득한 표정의 젊은 의사들이 터덜터덜 걷기도 한다.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에 빠져 있다면 도주한 전공의는 아닌지 궁금할 것이다.)


숲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나무길이라고 하기에는 울창한 길이 강변을 따라 쭉 이어진다. 좌나무 우찰스강 하여, 초록과 윤슬이 눈 심심할 새 없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IMG_7743.jpeg
IMG_7746.jpeg
나무와 강 사이로 넓은 산책로가 쭉 이어진다. 찰스강에는 요트와 카누도 많이 보인다.


그 사이를 보스턴 비둘기 격인 캐나다기러기가 꾸준히 지나다닌다. 거위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새인데 비둘기만큼이나 많고 똥도 많이 싼다. 똥이 크기 때문에 좀 더 문제다. 대부분 잔디밭에서 풀을 뜯어먹는 것 같지만 기러기인만큼 수륙양용(?)이다.


IMG_7736.jpeg
IMG_7740.jpeg
보스턴을 지배하고 있는 대형 비둘기인 캐나다 기러기


걷다가 힘들면 앉을 수 있는 벤치가 많다. 현지인들은 벤치에 앉고 그러다 눕고 또 그것도 성에 안차면 옆에 있는 잔디밭에 내려가 눕는다. 낭만 없이 잔디 진드기를 생각하는 나는 벤치에 앉는다. 그렇게 앉고 나면, 백수라도 바빠진다. 책도 읽으랴 산책하는 사람도 구경하랴 바람이 만든 찰스강 물결을 잠깐 바라보다 그 위의 요트와 카누를 구경하랴 그러다 청설모와 캐나다기러기가 가까이 오면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아주 바쁘다.


지금의 평화를 잘 기억해두자. 잘 쌓아두었다가 직장인의 고된 삶으로 돌아갔을 때 조금씩 꺼내어보자. 다 떨어질 때 쯤에는 그 바쁜 하루 어딘가에도 초록을 넣어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착한 날 밤, 트럭을 몰아야만 했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