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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하고 싶었다

보스턴 생활기 6편

by 윤슬

토종 한국인에게 영어로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한국식 교육으로 기본적인 읽기나 쓰기는 해결된다고 해도, 듣기와 말하기에 능숙해지려면 생존형 노출이 필수적인 것 같다.


미국에 처음 와서 느낀 것은 그들의 영어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유럽이나, 동남아의 관광지에서 통하던 영어로는 따라가기 힘들었다. 거기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발음으로 구사하는 영어는 영어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물론 음식을 주문하고 가벼운 대화를 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언제나 상대방에 약간의 배려를 기대해야 했다.


남편은 원래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못한 영어 실력이었다. 그러나 출근해서 하루 종일 영어로 대화하고 영어로 글을 쓰며 영어생활권에 진입한 이후에는 어느새 영어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직장이 없으니 생존형 영어를 배울 수가 없는 것이 애석했다.


금전적인 목적을 넘어서 보다 미국 생활에 흠뻑 빠져보기 위해 알바를 해볼까 고민했었다. 엄마 친구분은 미국에서 패스트푸드점 알바를 하면서, 실제로 사람 대하는 재미도 찾고 영어도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 비자로 일을 하려면 따로 Working Permit을 받아야 하는데, 신청하는 비용도 70만 원 넘게 들면서, 경우에 따라 반년 뒤에야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일 년 남짓 살고 가는 마당에, 돌아갈 때쯤 신청비용을 뽑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이 그려져 포기했다.


대신 나는 지역의 무료 ESL class를 찾아보기로 했다. ESL은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약자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영어를 배우는 프로그램이나 수업을 뜻한다. Boston과 Cambridge는 교육도시인만큼 수준 높은 대학과 공립 고등학교도 많았지만, 같이 온 가족들을 위한 ESL class도 다른 도시에 비해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인기가 많았는지 ESL에는 자리는 없었고, 결국 읽고 쓰기 위주의 일반 영어 수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 영어 수업은 입시나 취직에 도움을 받고 싶은 현지인이 많이 듣는다고 했다. 수업 난이도가 높을 것 같고 영어로 말할 기회가 줄어든 것 같았지만, 뭐라도 듣게 된 게 어디냐는 생각이었다. 센터에서는 바로 레벨테스트를 보러 오라고 했다.


과감하게 진행하며 별로 떨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내가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자유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 생활 중에는 직장 동료와 상사가 오랫동안 봐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서로 예의를 갖추고 신뢰가 쌓이기도 했지만, 그 말은 한편으로, 실수를 해서 소문이 돌거나 괜한 낙인이 찍히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 나는 말 그대로 자유인인 것이다. 이제까지의 나와는 다른, 사회생활에서는 Off 모드였던 내 안의 나를 꺼내 볼 수도 있었고, 그러다 뭔가 실수를 하거나 말을 잘 못하면, 심지어는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 척하며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도 안되고 내가 영 멍청하게 느껴진다면 두 번 다시 근처에도 안 가면 그만이다. 이런 생각으로 용기를 얻으며 나는 센터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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