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생활기 5편
알람을 맞춰놨지만, 일어났을 때는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우리가 바로 몇 시간 전에 보스턴에 도착했으며, 눈 뜬 곳이 집이라는 것이 아직 믿기지 않았다. 예약해 둔 이사 트럭(U-Haul) 픽업 시간이 다가와 서둘러 집을 나섰다. 보스턴은 안전하다고 들었지만, 미국 대부분 지역은 해가 지고 나서는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해 조금 무서웠다. 외계인이 본인 정체를 감추고 인간 세계에 섞여 들려는 것처럼, 우리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서둘러 픽업지로 향했다.
지금은 보스턴이 밤늦게까지 얼마나 안전한지 안다. 그러나 도착한 다음 날에는 익숙하지 않은 모든 것을 경계했다.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앞으로 집이라고 부를 이곳에서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다르게 다가왔다. 미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날도 밤늦게 길거리를 총총거리는 두 동양인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대 위에 있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며 길을 걸었다.
U-Haul은 밤에도 픽업하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인건비가 비싼 나라여서 대부분 셀프 이사를 하는 것 같았다. 남편은 트럭을 받기 직전까지도 인터넷으로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처음 하는 운전인데, 거기다 트럭 운전도 처음이었다. 고단한 여정 뒤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황에서, 긴장하며 운전해야 하는 남편이 걱정스러웠다.
트럭은 낯설게 생겼지만, 다행히 운전 방법은 일반 자동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어가 오른쪽 아래에 있지 않고, 계기판 위쪽에 있다는 정도만 달라 보였다. 운전 감각이 좋은 남편은 금방 적응했고 우리는 목적지로 서둘러 향했다.
오늘 가야 할 집은 총 세 군데였다. 그중 두 집이 한국인이 많이 사는 행콕 빌리지라는 단지에 위치해 있었다. 타운하우스 같이 생긴 집들이 연결되어 있는 단지였는데, 규모가 컸기 때문에 여러 차례 통화하며 간신히 맞는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가구를 보러 집에 들어가자마자 위층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났다. 이 단지가 한국에서 말하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여서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국인들이 많이 산다고 했다. TV와 거울, 의자를 깨지지 않게 조심하며 트럭으로 날랐다.
다시 눈폭풍이 치려는 것 같아 서둘러 두 번째 집으로 차를 움직였다. 두 번째 집에서는 구매한 것은 소파였고 생각보다 무거워서 다 같이 합세해 날라야 했다. 보스턴에 안식년으로 온 교수 가족이었는데, 깨끗하게 썼다며 소파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컨디션은 아주 좋았다. 보스턴에는 다양한 이유로 짧게 살고 가는 가족들이 많아서 확실히 물건을 중고장터로 구하는 것이 편한 것 같았다.
다시 트럭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트럭을 밤새 주차해 놓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 안에 짐을 모두 내리고 트럭까지 반납해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구글맵으로 최소 시간 경로를 찍었더니, 불행히도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길이었다. 왔던 길이 좀 막혀서인지 고속도로로 안내가 된 것이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에야 여기가 고속도로라는 걸 알아챘고, 별수 없이 남편은 속도를 높였다. 남편도 나와 똑같은 피로감을 느낀다고 했을 때, 이건 목숨을 건 질주였기에 나는 차를 꽉 잡고 남편과 도로를 번갈아 살폈다. 언제 죽을지 알고 죽는 게 나을지, 아니면 비겁하지만 눈 감고 있다가 순식간에 가는 게 나은지 고민하다가 전자로 마음을 굳혔다.
마지막 집은 바로 우리 아파트 옆 아파트였고, 우리는 먼저 트럭에 있던 짐을 집으로 옮긴 뒤 마지막 집으로 가기로 했다. 임대사무소의 Peter에게 카트를 미리 빌려 놓았지만, 소파는 카트에 실릴 수 있는 크기가 아니어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둘이서 소파를 잡고 이리저리 돌려 가며, 여기저기 부딪혀 가며 옮겼는데, 로비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소파를 자연스럽게 거기에 두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다. 다른 자질구레한 짐까지 서너 번 오르락내리락 한 끝에 트럭을 모두 비웠다.
옆 아파트로 트럭을 옮겨, 책상과 침대 프레임을 받아왔다. 남편은 주 2일 정도 재택근무를 할 예정이었기에, 서서도 일할 수 있는 좋은 전자동 책상을 구했다. 마지막에는 거의 물건과 함께 굴러가듯 집으로 올라갔다. 근육통을 느끼는 단계를 넘어, 어떤 육체적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임무를 완수했다는 뿌듯함으로 트럭을 반납하러 가는 길은 가벼웠다. 무인 반납 처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반납 키박스를 찾느라 골목 구석구석을 헤매야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반납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을 탔을 때 시간은 이미 자정에 가까워져 있었다. 안전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전철 칸을 골라 앉고, 우리는 힘이 풀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리할 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날씨가 좋았다면 짐 옮기는 게 조금이나마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눈폭풍이 몰아치는 매서운 보스턴 겨울밤에 하기에 좋은 작업은 아니었다. 그래도 도착하는 날에 맞추어 주문해 놓았던 매트리스가 아주 큰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 매트리스를 고르느라 고민을 좀 했는데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 제법 단단한 매트리스가 우리 허리에 딱 맞았다. 미국 매트리스는 저렴할수록 firm이라고 되어 있어도 한국인 기준 출렁이는 것이 많다고 했다. 적당히 딱딱한 침대가 고단한 허리를 좀 안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