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서구화’가 ‘근대화’의 동의어가 아닌 이유

20세기 전환기 ‘독일의 독일음악’과 ‘일본의 독일음악’

by yoonshun

Walter Frisch, "German Modernism Music and the Art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7.


神前 尚生、『音楽美学と一般思想史』, 近代文藝社, 2011.


19세기 말 동아시아의 서구화와 맞물려 있는 독일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낭만주의에서 모더니즘으로의 전환기이자 20세기로의 이행기 언저리에서 몇 가지 어려운 주제들을 만나게 된다. 메이지 초기 일본에서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서양식 음악을 학습하기 시작했지만, ‘보편적’ 서양음악이라는 실체가 존재했다기보다는 당대 유럽의 어떤 현상과 유행을 상당 부분 반영해 도입된 양상을 여러 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지의 급격한 변화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할만큼의 환경이 아니었던만큼, 대체로 동시대의 어떤 현상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독일 모더니즘”의 저자 월터 프리쉬는 1980년대 초부터 콜럼비아 음대에 재직하며 주로 19-20세기 독일어권 음악을 ‘독일어를 모르는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특정 시기가 아니라 언제라도 찾아낼 수 있는 ‘전환’의 상태”를 ‘근대(modern)’로 강조했던 보들레르의 정의를 제시하며, ’기존의 음악사에서 주로 전통과 질서의 해체와 파괴에 집중되어 온 ‘근대’의 한정된 범위를 확장해 ‘과거’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측면으로서의 ‘근대’에 주목한다. 이 때 수동적이며 불가피한 상태로서의 모더니티modernity와 상대적으로 이념적이고 자발적인 현상으로서의 모더니즘modernism을 구분하고 있다.


관련해서 더 자세히 살펴볼만한 부분은 19세기 이후 독일어권에서 바흐의 수용과 재해석에 관한 현상이다. 저자는 바흐의 존재와 그의 작품이 19세기 사람들에 의해 ’발굴’된 이후, 바흐가 활동했던 시대의 맥락과는 무관한 새로운 의미가 끊임없이 부여되어 왔음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세기말’ 현상에 상대되는 ‘치유’와 ‘건강’의 가치를 바흐와 그의 음악에서 찾아내려는 시도들에 접근한다.


1905년 한 음악 잡지(Die Musik)에서 동시대 각 분야의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중 “J.S.바흐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이며, 우리 시대에 그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다수의 응답자들이 ‘건강’, ‘휴식’, ‘치유’ 같은 표현으로 답한 기록들을 정리해 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아울러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가 집필한 바흐 연구의 독일어판(1908)에는 “바흐는 우리 시대에 절실하게 필요한 영적 통합과 열정을 얻게 해 준다”는 구절이 수록되어 있는데, 1905년 출간된 프랑스어 원본에서는 이와 같은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작년에 출간된 한국어판은 독일어판을 기준으로 번역되었다.) 이처럼 쇤베르크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의 해체나 조성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서구음악의 ‘근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강조되는 한편으로, 이와 같은 ‘과거의 재해석’이 ‘근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부분에 대해서도 더 알아봐야 할 면면들도 많아 보인다.


반면 동아시아의 ‘근대화’는 대체로 ‘서구화’와 동일시 되어 왔던 이유로, 일단 서구의 사상과 그 역사를 ‘학습’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음악미학과 일반 사상사”는 바로 서구의 음악미학을 이해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해 그리스도교, 르네상스, 바로크, 낭만주의를 거쳐 20세기까지 이어지는 서구 사상의 흐름을 익힐 수 있도록 정리해 놓은 ‘교과서’처럼 구성되어 있다.


서양인들보다도 서양 사상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던 ‘근대화 시기 동아시아’ 지식인들의 노고를 실감하게 되는 한편으로, 이제는 서구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교과서’ 같은 지식을 구성하고 학습하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동아시아라는 맥락 속에서 겪어온 경험과 역사를 바탕으로 서구를 바라보며 이해하는 방식과 의미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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