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으로 이주한 중부유럽 출신 피아니스트의 본심

코스모폴리탄으로 위장된(?) 알프레트 브렌델의 뿌리깊은 중부유럽 정체성

by yoonshun

Alfred Brendel, “Ausgerechnet ich. Gespräche mit Martin Meyer”, Carl Hanser Verlag GmbH & Co. KG, 2012.


Alfred Brendel, Peter Gülke, “Die Kunst des Interpretierens: Gespräche über Schubert und Beethoven”, J.B. Metzler, 2020.


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1931-2025)이 남긴 수많은 저작 중에서도 그가 아직 만 70세가 되기 전이던 2000년, 스위스인 저널리스트 마르틴 마이어와 진행한 대화의 기록은 특별하다.


생애와 음악, 연주, 집필 활동에 이르기까지 크게 네 가지 주제를 따라 이어지는 회고 속에서,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체코-크로아티아-오스트리아를 아우르는 ‘중부유럽mitteleuropäisch’ 문화권에서 성장하며 기반을 이룬 브렌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그는 스무살 무렵 빈wien에 정착해 읽기 시작한 무질(Robert Musil, 1880-1942)을 비롯해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 후고 발(Hugo Ball, 1886-1927)과 같은 당대 중부유럽 작가들의 작품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당대 음악가들의 거점이던 빈에 거주하면서도, 주류의 제도권과 선을 그으며 스스로를 아웃사이더Außenseiter였다고 규정하며, 정규교육 과정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를 택했던 브렌델은 결국 마흔 즈음 “전후戰後의 일시적 에너지에 비해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했던” 빈을 떠나, 도시체질Städter의 자신에게 최적의 코스모폴리탄 환경이라 여긴 런던에 정착했다.


뿌리 깊은 중부유럽 독일어권의 정체성에도, 오스트리아 본토 출신이 아니라는 결격?사유 때문이었을까, 영어에도 능통하고 이미 오랜 기간 미국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그가 중간지대에 해당하는 런던을 최종 정착지로 삼게 된 배경은 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브렌델은 이후 바이마르 출신의 독일인 지휘자 겸 음악학자 페터 귈케(1934-)와 2013년부터 2019년 여러 차례에 걸친 (역시 중부유럽의 조상인) 슈베르트와 관련한 대화와 편지 기록을 엮어 출간했다. 앞서 대화상대였던 마이어가 스위스인이었음을 감안하면, 범독일어권 지식인들의 공통 화제로서 그들의 전통 (특히 종교개혁 이후의 독일) 음악이 갖는 무게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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