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에게 베토벤이란? 일본인들에게 쇼팽이란?

유럽 외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들

by yoonshun

Jindong Cai and Sheila Melvin, “Beethoven in China: How the great composer became an icon in the People’s Republic”, Penguin books, 2015.

중국에서의 베토벤: 대작곡가는 어떻게 인민공화국의 우상이 되었나


多田純一 、『日本人とショパンー洋楽導入期のピアノ音楽』、アルテスパブリッシング、2014

일본인과 쇼팽: 양악도입기의 피아노 음악


2000년대 초 미국 동부에서 동아시아 (주로 한중일) 출신 클래식 음악 연주자들 수십명과 인터뷰를 진행했던 요시하라 마리의 연구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인터뷰이들이 각자 인식하는 스스로의 정체성과, 미국인(또는 非아시아계인)이 동아시아인들에게 기대하거나 이미 갖고 있는 고정관념들 사이의 격차가 여러 형태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게된다. 인터뷰에 응한 다수의 연주자들은 대체로 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에 미국의 (프리칼리지를 포함해) 음악대학에서 공부했거나 전문 연주자로 데뷔한 경험을 갖고 있고, 이는 곧 이들이 (1969년생인 저자의 또래이거나 대체로 비슷한 세대에 속하며) 이미 서구식 제도 속에서 어릴 때부터 서양음악을 접하며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럼에도 이렇게 서구화 이후의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성장한 아시아계 연주자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이나 ‘전통’이라는 가치에 연관된 질문을 마주할 때마다 (대체로 공통적인) 당황스러움이나 혼란의 순간을 겪어 왔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아시아계 연주자들이 호소?하는 한결같은 곤란함 중에는 “서양인들이 아시아계 연주자들에게 뭔가 다른 ‘전통’의 표현을 기대한다”거나, “고유의 전통이 있으면서 왜 서양 전통음악을 열심히 하는지 궁금해 한다”는 식의 ‘전형적인’ 편견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으로 이런 내용들을 읽다 보면, 이들은 동아시아에 속한 각자의 모국이 ‘이미 오랜 기간 서구식 문화를 학습하는 전통’을 확립해 온 역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또는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 소홀히 인식해 온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제도적 서구화를 추진했던 일본의 경우, 이미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각 분야마다 서양인 교사들을 대거 고용하며 군대나 학교, 정부기관 등을 비롯해 서구식 체제들을 갖추어 갔고, 1880년대에 접어들면 서구식 교육과정을 통해 학문과 기술은 물론 문화 예술 분야에까지 서양의 주요 성과들을 모범으로 삼으며 학습하게 된다. 메이지유신 백 년(1968)을 지나 20세기 후반 고도 성장기를 거친 일본에서는, 최근 출간된 이노우에 토키코의 “오케스트라 일본인”에서 명시했듯 ‘일본 오케스트라 1백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 眞男, 1914-1996)가 일찍이 “일본의 사상”(1961)에서 “유럽산 사상도 일본에서는 이미 전통화 되고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80년대 어느 시점에 ‘대세’를 따라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한국의 어린이가 ‘서양음악’을 전공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서양’이 아닌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전개되어 온 (‘서양의 서양음악사’와는) 전혀 다른 흐름을 의식하게 되며 생겨난 수많은 질문들은, 결국 이 지역에 속한 나라들이 ‘서구’의 어떤 가치들을 따르고 배우고 넘어서기 위한 기획들을 추진해 가면서 백 년 이상의 세월동안 확립되어 온 ‘새로운 전통’들을 이해하고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동양학’이나 ‘서양학’. 또는 ‘전통’이나 ‘외래’ 같은 기존의 이분법적 접근만으로는 결코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들이 누적되어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중국의 베토벤’이나 ‘일본인과 쇼팽’ 같은 주제 역시 바로 그러한 ‘동아시아의 서양음악사 전통’을 상징하는 사례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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