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러시아와 중국의 서양음악 수용

서유럽 클래식 음악의 동유럽-동아시아 확장과 선택적 수용의 단서들

by yoonshun

Pauline Fairclough, "Classics for the Masses: Shaping Soviet Musical Identity under Lenin and Stalin", Yale, 2016.


Richard Curt Kraus, "The Party and the Arty in China: The New Politics of Culture", Rowmans&Littlefireld, 2004.


메이지 시기 일본의 전문 음악교육기관 도쿄음악학교(1888년 설립)에서는 다수의 독일계 중심 서양인 교사들이 활약했다. 20세기 들어 서양 유학을 다녀온 첫 세대 일본인들이 교사로 취임하기 시작하면서, 외국인 교사들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게 되는데, 한편으로 러시아 혁명(1917년) 이후에는 혁명에 반대해 러시아를 떠난 이른바 백계 러시아인(White émigré) 음악가들의 존재가 일본에서 점차 뚜렷해지게 된다.


1925년 '일본교향악협회'는 하얼빈의 동청철도교향악단 소속 연주자들 중심의 오케스트라와 도쿄에서 교류 연주회를 기획했고, 1929년에는 "재일러시아음악가협회"가 조직되었다. 러시아 출신의 음악가들 중에는 이 시기 일본에서 사실상 '서양 음악가'의 역할을 하며 활동의 기반을 마련한 이들의 사례들이 늘어갔다.


러시아계 영국인 저자가 집필한 "대중을 위한 클래식"에서는 바로 이들과 정 반대편?에 있던 소련의 음악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혁명으로 '소비에트 연합'이 성립되었음에도 '러시아'라는 명칭을 고수했던 백계 러시아인들이 일본에서 '서양인'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던 반면, 레닌과 스탈린이 주도한 소련이라는 새로운 공동체에서는 자신들의 음악과 상대되는 '서유럽'의 클래식 음악을 정책 노선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의 정당과 예술"을 쓴 오레곤 대학의 정치학 교수 리처드 크라우스는 "피아노와 중국의 정치학(Pianos and Politics in China: Middle-Class Ambitions and the Struggle over Western Music, 1989)"의 저자이기도 하다. 20세기 후반 중국 정부가 국가의 예술 활동에 개입하는 과정과 특징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서구 예술 장르들이 어떻게 수용되거나 검열되며 다루어져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서유럽 외부의 세계에서 서유럽의 전통과 고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저마다 다르게 진행되었지만,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련의 공통점이나 유사한 지향점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서구화 과정 또는 국가의 개입에 관한 연구에 많은 시사점을 전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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