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중반 바이마르 궁정 음악감독의 책임과 의미

프란츠 리스트에게 배우는 공공公共의 가치와 예술가의 역할

by yoonshun

Alan Walker, “Franz Liszt : The Weimar Years, 1848-1861”, Cornell University Press, 1993.


Peter Gülke, “Mein Weimar”, Insel, 2019.


지옥같은 기교의 에튀드, 또는 시詩와 원곡의 서정성을 그대로 살린 가곡 편곡집, (편협한 ‘서양음악’의 틀에서는 다소 낯설게 여겨질 수도 있는) 헝가리의 민속 선율들, 또는 피아노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장대하면서도 정교한 소나타 의 작곡가이자 연주자, 여기에 수려한 외모와 유혹적?인 사생활 에피소드 정도면, ‘리스트’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충분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토벤 심포니 전곡을 피아노 연주용으로 편곡하고, 기존의 심포니를 계승하면서도 완전히 갈아 엎은 교향시(交響詩, Symphonische Dichtung / Symphonic poem)를 개척했으며, 사제 서품까지 받은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몰입한 종교음악 창작에 이르기까지, 리스트가 관여한 음악의 범주는 결코 몇 가지 키워드만으로 요약하기 어렵다. 게다가 역사 속 어떤 음악가보다도 공공선에 대한 책임감에 무게를 둔 그의 섬세하면서도 대범했던 생애는 알면 알수록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리스트는 흔히 ‘헝가리인’으로 간단히 규정되곤 하지만, 그가 일생동안 거쳐갔거나 머물렀던 지역의 범주는 그가 만들어낸 음악들만큼이나 넓고도 다채롭다. 빈과 파리를 거쳐, 제네바와 본, 키이우, 프라하에서 드레스덴, 페스트로, 더 나아가 터키와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의 주요 도시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만큼의 이동 범위와 해당 지역에서의 적극적인 활동 기록이 남아있다. (19세기 중반 유럽대륙의 주요도시는 이미 철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때는 미국 진출에 대한 루머에 휩싸이기도 했던 리스트가 비교적 오랜 기간 머물렀던 도시는 바로 튀링겐의 (당시 약 1만명 남짓한 인구의) 소도시 바이마르였다. 음악학자 앨런 워커가 25년에 걸쳐 작업한 세 권 구성의 리스트 전기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두번째 권은 바로 이 ’바이마르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리스트가 바이마르 정착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그가 서른 초반이던 1842년 바이마르 카펠마이스터로 계약하면서부터였다. 바로 앞선 세대였던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와 실러(Friedrich Schiller, 1759-1805)가 이미 다져놓은 “바이마르 문화”를 초석 삼아 리스트는 공직자와 같은 자세로 이 도시의 문화를 이끌어 갔다. 바이마르 시기를 전후한 리스트의 활약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가 주최하거나 참여했던 수많은 자선 기금 마련 콘서트에 관한 기록들이다. 리스트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예술이 갖는 도덕적 가치였고,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 어려운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Génie oblige!”


바이마르 출신의 지휘자 겸 음악학자 페터 귈케(Peter Gülke, 1934-)는 여든 중반에 펴낸 회고록 “나의 바이마르”에서 리스트와 당시 바이마르 군주였던 카를 알렉산더(Karl Alexander August Johann, 1818-1901)가 계급이나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대등한 관계로 교류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앞선 세대에만 해도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 같은 궁정 음악가들이 사실상 군주에게 고용된 ‘하인’과 같은 입장이었음을 감안하면 바이마르에서 리스트가 차지했던 입지는 단순한 ‘음악가’ 이상의 책임과 권위를 갖는 역할로서 매우 상징적이다.


거대화 된 미디어와 산업이 역사 속 음악마저 경쟁적 상품으로 소비하기를 부추겨 온 20세기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리스트의 작품을 누가 잘 연주하는지, 또는 어떤 음반이, 어떤 악기가 훌륭한 소리를 구현하는지.. 와 같은 수많은 (때로는 너무 소모적인) 제3자들의 말과 글에 가려져, 정작 ‘리스트’라는 인물이 살아갔던 시대와 그가 창작한 음악의 진가에 접근할 기회는 너무도 드물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굳이 제3자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수십년에 걸쳐 리스트의 행적과 업적을 추적하고 연구한 앨런 워커와, 바이마르 출신 현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애와 얽힌 이 도시의 역사를 회고한 페터 귈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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