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관한 글'의 정체와 실체를 찾아서

서양음악사에서 ‘음악평론’의 등장과 전개

by yoonshun

Kevin C. Karnes, “Music, Criticism, and the Challenge of History: Shaping Modern Musical Thought in Late Nineteenth-Century Vienna”,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白石美雪著, 音楽評論の150年: 福地桜痴から吉田秀和まで. 音楽之友社. 2024.


“Understanding Toscanini”의 저자 호로위츠(Joseph Horowitz, 1948-)는 1970년대부터 (1976-1980, 1998-2011) 뉴욕 타임즈의 음악비평가(또는 평론가)music critic를 지내는 한편 (유럽과는 차별되는) “동시대 미국 음악사”서술에 공을 들이며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호로위츠보다 한 세기 이상 거슬러, “동시대 빈의 음악사” 집필을 시도했던 한슬리크(Eduard Hanslick, 1825-1904)는 서른 살 무렵인 1855년, 당시 빈의 주요 일간지Die Presse 고정 필진으로 활약했고, 이후 유력 잡지Neue freie Presse의 대표 음악 비평가로 업계의 권위자로 올라섰다.


1856년에는 빈 대학Universität Wien 교수로 임용되며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향력 있는 교육자로 입지를 얻었던 한슬리크와 그의 시대에는, 음악과 공연의 기록에서 ‘글’이 사실상 유일한 매체였고, ‘음악’을 ‘글’로 전달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이른바 ‘평론가’들의 존재가 갖고 있던 위상을, 오늘날과 결코 단순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모차르트나 하이든, 베토벤에 이어 슈베르트, 브람스, 말러와 쇤베르크에 이르기까지 음악사의 주요 인물들이 활약했던 거점으로,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오스트리아의 빈Wien에서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서도 ‘음악에 관한 글’이 갖는 무게감이 상당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애틀랜타의 에머리Emory대학 음대 교수 케빈 칸스는 이러한 맥락에 주목해 한슬리크-아들러(Guido Adler, 1855-1941)-솅커(Heinrich Schenker, 1868-1935)로 이어지는 빈의 음악사-음악평론 계보를 분석한다. 1848년 유럽의 혁명을 계기로, 예술과 음악에까지 흘러든 ‘민주화’의 기운이, 한슬리크가 1860년대 내세운 ‘현재 진행형의 역사(lebendige Geschichte)’로 이어졌다고 보는 그는, 한슬리크의 비평적 역사학critical historiography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지역, 당시의 정서를 살펴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음악평론의 150년”의 저자 시라이시 미유키(1958-)는 도쿄예술대학에서 음악학을 공부하고, 1990년대부터 존 케이지와 현대음악을 중심으로 음악회 리뷰나 해설을 전문으로 하는 음악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평론 활동의 거점은 “요미우리신문”이나 “아사히신문” 같은 주요 일간지와 NHK-FM 등의 전통적인 언론매체이다. 시라이시는 그동안 “음악평론이란 무엇일까”, “왜 음악평론을 쓰고 있을까”와 같은 근본적 질문에 진지하게 마주해 본 적이 없음을 인식하고, 근대 일본에서 서양음악을 수용하며 ‘평론’이라는 실체가 시작되고 정착하는 지난 한 세기 반의 역사를 연대순으로 정리해 펴냈다.


이 책에서는 메이지 초기에 해당하는 1870년대 초, 도쿄 최초의 근대식 신문으로 창간해 사실상의 관보 역할을 했던 “도쿄일일신문東京日日新聞”에 실린 음악 관련 칼럼이나 기사를 초창기의 음악평론으로 보고, 이 시기 일본의 서양음악은 일반 대중이 아니라 (이 신문의 주요 독자층이던) 황족이나 화족, 정치인들의 회합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어서 1898년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에 실린 연주비평을 계기로 근대 일본의 ‘음악평론’이라는 틀이 갖추어지게 되었다고 해석하는데, 역시나 뉴욕이나 빈, 도쿄, 그밖의 어느 도시에서든 ‘음악평론’의 전제에는 유력한 일간지와 같은 ‘매체’의 존재가 필연적임을 확인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칸스의 저작에 따르면, 근대사회 진입으로 ’과학적’ 탐구를 중시하며 ‘객관적’이고 ‘통계적’인 가치가 강조되던 19세기 후반 유럽의 정서는 학문으로서의 ‘음악학’ 성립 과정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고, 한슬리크와 같은 역사에 대한 ‘주관적’ 접근은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서구의 문화를 ‘학습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제도화 하기 시작한 메이지 일본에서도, 서양음악에 관한 기록은 절대적인 ‘지식’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뚜렷했다. (어쩌면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까지도 상당 부분 계승되고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닐 듯하다.) 음악 서술에서 ‘고정된 가치’를 찾아내려 하기보다는 ’비평’과 ‘역사’의 경계를 오가는 유연한 관점이 필요할 수 있다는 데 설득력을 더하는 문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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