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무게(2023, 원작 2020)"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2023, 원작 2020)"
저자의 생애 마지막 소설이기도 하고, (전작인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그랬지만) 한국에서는 결코 경험하기 어려운, 다언어 환경인 유럽의 한가운데서 수많은 언어와 그에 따른 감수성들을 구분하는 섬세함에 이끌리게 되는 서사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중심을 이루는 출판과 번역, 편지와 소설, 낭독으로 전개되는 다채로운 말, 글들은, 한편으로 ‘언어의 무게’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요즘의 서늘한 현실과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한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닐테고, 변하는 시대를 마냥 부정하기만 할 수도 없지만, 과거에 추구하던 방식이나 흐름이 더이상 통용되기 어려워 보이는 지점에서, 말과 글의 행방을 점점 더 고민하게 되는 날들이다.
** 읽는동안 표시해 둔 몇 몇 구절들 중에서
“… 언어를 바꾸면 지금 함께하는 순간의 음색과 온도도 변한다는 사실을 놀랍게 깨달았다.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머리카락을 훑는 느낌도 달랐다. 언어가 달라지면 감정도 달라지는 듯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p.153)
"Erstaunt merkten sie, wie sich Klangfarbe und Temperatur der geteilten Gegenwart veränderten, wenn sie die Sprache wechselten. Es ließ sich schwer erklären, aber es war dann anders, sich übers Haar zu fahren. Die Gefühle schienen sich mit den Wörtern zu verändern. Wie war das möglich?" (p.141)
“…글로 쓴 생각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점이지. 나는 이제 그 생각들을 그냥 실행에 옮기는 게 아니라 꼼꼼하게 숙고하며 거리를 두고 마주할 수 있어. 생각들은 금방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나는 언제나 그 생각으로 돌아올 수 있지. 글씨로 표현됨으로써 생각은 예전에 조용하고 일시적인 정신의 일화일 때는 갖지 못했던 확실성을 얻게 돼. 이 확실성을 통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생각 속에서 나는 과연 누구인지 제대로 알게 되고 배우지." (p.162)
"Das eine ist, dass die Gedanken, wenn sie aufgeschrieben werden, auf andere Weise zu existieren beginnen: Ich kann ihnen, statt sie nur zu vollziehen, nun mit einer erwägenden und prüfenden Distanz gegenübertreten, sie erlöschen nicht gleich wieder, sondern haben Bestand und sind etwas, auf das ich stets von neuem zurückkommen kann. Indem sie in geschriebenen Worten zum Ausdruck kommen, erlangen sie eine Bestimmtheit, die sie vorher, als stille und flüchtige Episoden des Geistes, nicht besaßen. Und durch diese Bestimmtheit lerne ich erst richtig kennen und verstehen, was ich denke und wer ich in diesen Gedanken bin." (p.149)
“...(콘티) 교수님은 대강당에서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어요. 계몽된 사람은 두 가지 질문을 언제나 해야 한다고 하셨지요. ’나는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하는가?‘와 ’왜 그렇게 생각하나?‘였어요.” (p.373) ... “콘티의 아버지와 삼촌은 판사였고 파시즘의 단순 가담자였으며, 무솔리니 치하에서 공직에 남았다. 아들은 국가와 법을 직접 이해해보려는 들끓는 의지로 대학에 갔다.” (p.378)
파스칼 메르시어, “언어의 무게”, 전은경 옮김, 비채, 2023.
Pascal Mercier, “Das Gewicht der Worte”,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