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독일 문학(또는 사상)과 바그너

토마스 만, “바그너와 우리 시대”

by yoonshun

원작

Erika Mann. ed, "Wagner und unsere Zeit", Berlin: S. Fischer, 1963.


괴테를 비롯한 근대 독일어권 문학 전통에서 ‘연극’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는 어렴풋한 짐작은 “우리 독일인들은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연극에 대한 경외심을 더 타고난다”고 강조하는 토마스 만(1875-1955)의 1908년 문장에서 비로소 뚜렷해진다.


음악가이면서도 극작가이자 사상가로서의 정체성을 숨길 수 없던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의 영향력이 20세기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지속적인 논의 대상이 되는 배경도 바로 이러한 ‘독일인과 연극’의 맥락에 놓여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토마스 만이 생애에 걸쳐 기록했던 바그너와 독일, 그에 얽힌 사상이나 역사 인식에 관한 글들을, 그의 사후 장녀 에리카 만의 편집 작업을 거쳐 출간한 이 책은 “바그너와 독일”에 관해 떠오르는 수많은 물음들을 ‘음악사’의 맥락만으로는 결코 해명할 수 없음을 실감하게 한다.


토마스 만이 1948년 뉴욕의 한 잡지에 영어로 기고한 “내가 좋아하는 음반들”에 관한 해설에 따르면 그는 ‘초기 축음기의 열렬한 애호가’였다고 한다.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LP레코드가 대량생산 되기 시작한 시기가 1950년대임을 감안하면, 1955년에 세상을 떠난 토마스 만이 경험했던 음반의 범주는 극히 한정적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 중에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는 바그너 음악극의 단편들은 그저 ‘음악’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20세기 전반기의 토마스 만에게 절실했던 ‘독일 문학’의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년을 대표하는 “파우스트 박사”의 창작 과정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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