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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06. 2024

사랑 대신 연인의 스웨터에서 나는 냄새에 대해 쓰자

작고 하찮은 디테일의 중요성

신은 디테일에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두 가지 말 모두 많이 사용된다. 누가 처음에 한 말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속담은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디테일이 글을 살리는 생명줄이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디테일이 글을 살리는 생명줄



왜 글 쓸 때 디테일이 중요할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관계있는 것은 집중해 보지만, 관계없는 것은 대충 흘려버리는 경향이 있다. 좋은 글은 읽는 동안 독자가 감정이입해 마치 자기 일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표현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디테일일수록 독자가 글 속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고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라는 문장만으로는 어떤 감정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 아무 관련 없는 남 이야기처럼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집을 떠난 후, 그가 벗어두고 간 스웨터에 코를 묻곤 했다. 빨지 않고 놔둔 스웨터에서는 그의 체취와 그가 즐겨 쓰던 오데 코롱의 향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었다."라고 쓴다면 독자들은 그녀의 그리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녀는 그녀가 남기고 간 스웨터를 껴안으며, 그 특유의 따뜻하고 편안한 체취를 맡았다


독자가 글 속 장면에 직접 들어간 것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서도 디테일을 잘 살려준 묘사가 필요하다. '해변은 아름다웠다'라고 쓰는 것보다는 '진주를 액체로 풀어놓은 듯한 우윳빛 바다, 설탕처럼 곱게 반짝이는 모래알, 스르르 밀려왔다 모래에 부딪혀 바스스 부서지고 흩어지는 파도 소리, 코끝을 간질이며 밀려드는 소금기 있는 공기' 등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을 세세하게 묘사해 주면 독자는 마치 그 바닷가에 가 있는 것처럼 그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디테일을 잘 살려 글을 쓸 수 있을까?


첫째, 큰 주제를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작은 디테일에 집중하자.


연인에 대한 그리움이나 사랑을 쓰고 싶다면, 차라리 연인이 벗어두고 간 스웨터에서 나는 냄새에 대해 쓰자는 말이다. '사랑'이나 '그리움'처럼 거대한 주제를 쓰려고 덤비면 커다란 주제 앞에 숨이 막히고 막막해지기 쉽다. 추상적인 개념인 그리움이나 사랑보다는 눈앞에 보이고 내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스웨터처럼 작은 물건에 집중할 때, 원래 얘기하고 싶던 사랑이나 그리움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추상적인 관념으로 가득한 글은 독자의 심장에 도달하지 못하고 금세 휘발되지만, 작은 물건들로 그득한 글은 독자의 오감을 건드려 결국은 심장에 남는다.


스웨터처럼 작은 물건에 집중할 때, 원래 얘기하고 싶던 사랑이나 그리움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


둘째,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보여 주자.


추상적인 감정이나 생각도 구체적으로 보여 주자


'그녀가 예뻤다'라고 쓰면 문장 속 그녀가 전혀 예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옆을 지나치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 표정에 유난히 상냥하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짙은 속눈썹 때문에 검게 보이는 그녀의 빛나는 회색 눈동자가 다정한 빛을 띠며 마치 그를 알기라도 하듯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뛰노는 절제된 활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붉은 입술을 곡선 모양으로 만든 희미한 미소와 빛나는 눈동자 사이에서 차분한 생기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다녔다*'라고 쓰면 브론스키가 안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매력에 빠지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중)


붉은 입술을 곡선 모양으로 만든 희미한 미소와 빛나는 눈동자 사이에서 차분한 생기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다녔다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꽃'이라고 쓰는 대신 '붉은색 팬지'나 '샛노란 복수초'라고 쓸 때, 독자가 눈으로 보듯 꽃을 그려볼 수 있게 해 준다. '차를 탔다'라고 쓰기보다는 '20년도 더 된 빨간 티코를 몰고 나타났다'라고 쓰는 편이 독자의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셋째, 평소에 관찰과 기록 습관으로 디테일을 수집해 두자.


디테일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으니, 늘 기록하고 수집할 준비를 해야 한다


디테일을 작가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작가가 직접 보고 들은 것보다 더 생생하게 잘 쓸 수는 없다. 평소에 어디를 가든 늘 디테일을 수집하겠다는 마음으로 관찰해야 한다. 슈퍼마켓 계산대 앞에 줄을 설 때도 앞에 서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관찰하거나 그가 옆에 있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 봐야 한다. 사소하지만 조금이라도 낯설거나 새로운 것이 있으면 발견한 디테일을 꼬박꼬박 적어 두어야 한다. 작은 수첩을 들고 다녀도 좋고, 휴대폰 메모앱을 사용하거나 녹음기를 쓸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사소하지만 신선한 디테일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으니, 늘 기록하고 수집할 준비를 해야 한다


디테일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으니, 늘 기록하고 수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들을 압도하려면 항상 두 가지를 동원해야 한다. 스케일과 디테일.
박서련 <더 셜리 클럽>



뮤즈 역시 디테일에 있다


스케일이 큰 일이나 사건이 매일 빵빵 터질 수는 없다. 대신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작고 하찮은 것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사소한 일들, 찰나에 스쳐 지나가 채 의미가 되지 못한 것들을 수집하고 글쓰기에 활용할 수는 있다. 내가 쓴 글이 조금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면, 눈에 불을 켜고 디테일을 수집해 보자. 작고 하찮은 것들에 집중할 때 내 안에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이 떠오를 것이다. 


뮤즈 역시 디테일에 있기 때문이다.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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