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May 20. 2024

끝인가 싶을 때 극한에 도전하자!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도전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다. 트렌치코트와 점퍼의 앞깃을 여미고 어깨를 움츠린 채 걷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반소매에 핫팬츠를 입고 찬바람을 가르며 달려도 땀이 난다. 입과 코를 열어 공기를 최대한 많이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목이 말라 오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방망이질 친다. 운동 부족인 다리 근육이 후들후들 떨리고, 금방이라도 쥐가 날 것처럼 불안하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위태위태한 순간들. 이쯤 하면 많이 한 거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 눈물이 난다. 달리고 달리는 건 몹시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달리면서 점점 가벼워진다. 늘 꽂고 달리던 이어폰까지 빼버리고, 음악도 없이 홀로 달린다. 조금씩 색이 변하고 있는 나무들을 보고, 어딘가를 향해 부지런히 걷고 있는 사람들을 스치듯 바라본다. 깜박거리며 점멸하는 신호등을 보고 좀 더 속력을 높여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오는 오토바이와 부딪힐 뻔했다. 많이 가벼워진 내 몸이 재빨리 피했다.


달리고 달리는 건 몹시 외롭고 고통스러운 일


땀으로 흠뻑 젖은 몸에 쏟아지는 찬물을 맞으면, 바싹 말라비틀어진 식물 같고, 박제 같았던 내 몸이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며 파릇한 새싹이 삐죽 솟아오르는 것처럼, 몸이 간질간질 새 순이 돋는다.


박제 같았던 내 몸이 꿈틀거리며 살아난다


후배 하나가 10킬로미터 단축 마라톤에 같이 나가자고 권했을 때, 단번에 거절했다. 잠깐 반짝 달리는 거라면 몰라도, 오래 견뎌야 하는 장거리 달리기는 내게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인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기에, 괜히 고생을 사서 하고 싶지 않았다.


달리기는 내게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역설에 동의한다는 것은 곧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이는 자아보다 훨씬 큰 세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체험은 우리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느끼는 지점, 해결책이라곤 전혀 없어 보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정확하게 일어난다. 이 순간은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큰 곳으로부터 초대를 받은 순간이다

로버트 존슨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중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10 년이 지났는데, 눈에 띄는 결과물은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막다른 골목이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데, 나아갈 수도 없을 것 같은 두려움. 그때 육체적으로 극한의 경험을 하면서 정신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한, 작가들이 떠올랐다.


파울로 코엘료 (출처: 경향신문)


17세부터 세 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브라질 군사정권에 두 번이나 수감되어 고문당하는 삶을 살았던 파울로 코엘료는 산티아고 순례 여행의 경험을 담아낸 <순례자>를 시작으로 뒤늦게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때 나이 마흔 살이었다.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에 이르는 7백 킬로미터의 길을 순례한 후 쓴 책을 시작으로, 많은 책을 쏟아내고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와일드>는 리즈 위더스푼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갑작스럽게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잃은 20대 여성, 셰릴 스트레이드. 부모와 남편 등 가족을 잃고 홀로 식당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마약과 섹스에 중독되어 이제 인생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어 보였다. 너무 젊은 나이에 인생의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그때 그녀의 손이 우연히 뻗어 집어 든 책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제1권: 캘리포니아 편>이었다. 9개의 산맥과 사막, 황무지, 인디언 부족의 땅 등으로 이뤄진 4,285 킬로미터에 이르는 미지의 세계가 그녀를 손짓해 불렀다. 수주에 있는 전 재산을 털어 등산장비를 구입했다. 6주 동안 걷고 또 걸었다. 발톱이 거의 붙어 있지 않은 맨발로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그곳을 빠져나왔을 때, 그녀는 더 이상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걷기 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 경험을 쓴 책 <와일드>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그녀는 주목받는 신예작가가 되었다.


일생에 한 번은 모든 것을 걸고 떠나야 할 길이 있다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중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오랫동안 기다렸던 등단을 한 소설가의 소설을 만났다. 식량, 취침 장비, 의복 등을 짊어지고 6박 7일 동안 250킬로미터를, 그것도 아타카마 사막, 고비 사막, 사하라 사막, 남극 등 극지만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를 완주해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최연소 기록을 보유한 청년을 소개받기도 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한계에 부딪혀 더 이상 발을 떼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 그때가 바로 극한에 도전해야 하는 순간이다. 많은 이들이 시간과 돈, 에너지를 쏟아 걷고, 달리고, 기어오르며 극한에 도전한다. 마라톤, 극지 마라톤, 번지점프, 등산, 산티아고 순례길,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운동이라면 숨쉬기 운동 외에는 절대 않지 않던 내가 트레드 밀에 오르는 건, 그것도 걷지 않고 달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겨우 트레드 밀에서 몇 킬로 뛰는 걸로 엄살이냐고 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을 만큼 힘든 일일 수도 있다.


우선 5킬로미터를 목표로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3.5킬로미터 지점이 다가오는 게 너무 두려웠다. 그 지점이 되면 갑자기 뛰는 게 너무 힘들어지고, 이 정도면 됐다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속력을 조금만 줄이면 어떨까 하는 유혹을 떨치기 힘들고, 아주 조금 줄이는 건 괜찮을 거야, 하면 속력을 줄이는 순간, 100미터도 채 더 못 가고 주저앉고 만다. 고비를 이를 악물고 넘겼어야 했는데, 조금만 봐주자며 적당히 타협하려다 완전히 주저앉게 된 것이다. 처음 한두 번, 내 한계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뛸 때는 좀 느리고 힘들기는 해도 중간에 두려움 없이 무사히 5킬로미터쯤은 뛸 수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3.5킬로 지점부터 힘들어진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그 지점부터 급속하게 피어오른 공포감에 자꾸 주저앉았다. 목표지점인 5킬로를 겨우 2,3백 미터 남겨놓고 멈춘 적도 있다.



벼룩 실험이 떠올랐다. 책상 위에 벼룩을 올려놓고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면 놀란 벼룩들이 팔짝 뛰기 시작한다. 어떤 벼룩은 자기 키의 100배 이상도 뛴다. 그런데 벼룩 위에 유리 덮개를 설치하면, 한 번 유리에 머리를 부딪친 벼룩들이 다시 부딪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뛰는 높이를 조절한다. 나중에 유리 덮개를 아예 치워 버려도 벼룩은 유리덮게 높이 이상으로는 절대 다시 뛰지 않는다.


자기 키의 100배 이상 거뜬히 뛸 수 있던 벼룩이 유리 덮개로 한계를 정하기 시작하자, 결국 장애물이 없어져도 본래의 능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무서운 이야기다. 나 역시 5킬로쯤은 뛰어본 적도 있고 충분히 뛸 수 있는데도, 머릿속에 그어진 심리적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 능력에 급격한 저하가 일어난 것이다. 한계가 외부 상황에 기인하든, 순전히 자기 상상 안에서 그어진 것이든, 그 한계를 짓는 사람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머릿속에서 내가 그어 놓은 한계선. '난 인내심도 없고, 오래 달리기는 평생 제일 못하는 종목이야. 난 3.5킬로 지점만 다가오면 심장이 터질 듯 아파.' 등등.


그 한계를 짓는 사람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한계부터 걷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드 밀을 벗어나 집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 3.5킬로 지점이 다가오는지 너무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트레드 밀 위의 숫자들을 지켜보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밖으로 나와 속도와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 대신 나무와 하늘을 보고 달렸다. 그러자 나쁜 마법에서 풀려났다. 그제야 겨우 5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었다. 그것도 트레드 밀에서 달릴 때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암실에서 두 개의 유리병에 각각 똥파리와 꿀벌을 넣고 유리병을 뒤집는다. 위에서 불을 비추면 꿀벌은 밝은 곳이 출구인 줄 알고 막혀 있는 윗부분에서만 맴돈다. 하지만 꿀벌에 비해 머리가 나쁜 똥파리는 일단 몸으로 부딪쳐 본다. 그렇게 몸으로 유리병 이곳저곳을 부딪쳐 보다 결국 꿀벌보다 먼저 출구를 찾아 나온다. 일단 부딪쳐 보는 게 답일 때도 많다.


달리다 보면 마지막 몇 백 미터를 남겨 놓은 시점에서 당장 포기하고 싶어 진다. 포기해야 하는 수많은 변명이 머릿속을 분주히 오간다. 발바닥에서 불이 나고, 손과 팔이 저리기 시작하고, 다리는 금방이라도 꺾일 듯 꼬이고 있다. 두통은 또 어떻고... 그럴 때마다 속으로 외친다.


아주 작은 약속이나 결심도 절대 그냥 흘려버리지 말자!


과감하게 경계를 넘어본 사람은 안다. 세상의 끝은 낭떠러지가 아니라는 걸.
-목수정 <월경독서> 중


그 모든 한계는 나 스스로 머릿속에 그어놓은 허상에 불과했던 것


드디어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1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내 한계는 3.5킬로 지점도, 5킬로 지점도 아니었다. 그 모든 한계는 나 스스로 머릿속에 그어놓은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마라톤은 42.195킬로미터니, 아직 4분의 1도 도달 못했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믿는다. 언젠가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외칠 날도 올 것이다.


앞이 캄캄할 때, 여기가 끝인가 싶을 때, 그럴 때는 극한에 도전해 보자. 내가 생각한 한계를 뛰어넘을 때 분명 새로운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진다.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강연 및 1:1 글쓰기 코칭 신청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


이전 25화 죽을 것 같아, 그럴 때 딱 5분만 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