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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n 17. 2024

게으름은 정말 죄일까?

게으름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져 새벽 1시 반에 차 한 잔을 끓여 노트북 앞에 앉았다. 요 며칠 자꾸 일찍 눈이 떠져 하루 수면 시간이 다섯 시간이 채 안 된다. 퇴고를 기다리는 원고가 눈앞에 있지만, 며칠째 손도 못 대고 있다. 읽다 만 소설을 읽기도 하고, 이미 읽은 책들을 뒤적여 밑줄 친 문장을 적어보며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잠도 못 자며 하루종일 분주하게 움직인 나는 부지런한 걸까? 해야 할 원고를 마감하지 못하는 나는 게으른 걸까?


평생 스스로를 부지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늘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고, 학교에도 손에 꼽힐 정도로 일찍 갔다. 아무 할 일 없이 빈둥빈둥 누워 있거나, TV 앞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걸 싫어했다. 게으름의 다른 말이 여럿 있는데, 그중 나태나 태만에 해당하는 게으름을 천성적으로 거부해 왔다


나태나 태만에 해당하는 게으름을 천성적으로 거부해 왔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쓴 버트런드 러셀도 평생 40여 권의 저작을 남겼고, 하루 평균 3천 단어 이상의 글을 썼다니, 나태나 태만에 해당하는 게으름과는 분명 거리가 멀었다. 러셀이 비판하고 싶었던 건 산업사회에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쉬지 않고 돌리는 데 이용되고 결국 인간을 진정한 의미의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킨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 확립을 위해 충분한 여가 - 러셀은 하루 4시간 노동이 적절하다고 주장 - 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 책에서 게으름은 여가와 쉼의 의미로 쓰였다.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영국 노동자들에게 홍차를 즐기게 했다


영국인들이 즐겨 마시는 오후의 홍차 한 잔이 그저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이유도 거기 있다. 지치고 힘들어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오후 4시쯤, 설탕을 듬뿍 넣은 홍차 한 잔으로 카페인과 당분을 공급한다. 그렇게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홍차를 즐기게 했다.


무엇을 위한 건지 사고해 볼 겨를도 없이, 기계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걸 부지런함이나 근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한 건지 제대로 사고해 볼 겨를도 없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기계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걸 부지런함이나 근면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공장에서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있는 노동자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뚜렷한 방향이나 목적 없이 똑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며 회사나 학교를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늘 바빠 보이고 실제로 바쁘지만, 실속은 없고 능력이 돼도 도전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람들. 무엇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지 못하고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룬 채 사소한 일에 매달리는 사람들. 완벽을 기한다는 이유로 결정을 끊임없이 미루는 사람들. 모두가 게으른 사람들이다. 이런 게으름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분주함 속의 무기력'이 아닐까.



분주함이 유행처럼 퍼져 유럽을 황폐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제 넋을 놓고 서두르며, 여유를 부끄러워한다. 고된 노동을 사랑하고 빠른 것, 새로운 것, 진기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인내력이 부족하다. 그대들의 근면은 도피다. 자기를 망각하려는 의지다.

프리드리히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일하던 시절, 살인적인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며 자투리 시간을 15분 단위로 나눠 알뜰하게 썼다. 불어를 배우고, 유화를 그리고, 드럼을 배우면서. 그러던 어느 날, 사표를 던지고 캐리어 하나 달랑 들고 미국으로 갔다. 바로 하루 전까지만 해도, 잠시도 쉴 틈 없이 분주했는데, 하루아침에 아무런 할 일이 없는 백수가 되었다. 방송을 할 때는 늘 시계를 보며 초 단위까지 정확하게 맞추며 움직였는데, 갑자기 지켜야 할 시간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모두 사라졌다. 고요하고 무한해 보이는 시간만 내 앞에 턱 놓인 셈이다. 처음 얼마 동안은 넘치는 시간 앞에 불안하고 당황스러웠다. 생산적인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고, 내 몸속의 독소가 빠져나가듯 근면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비로소 내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겼다.


근면에 대한 강박관념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비로소 내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이 보이기 시작했다


게으름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죠. 이러한 삶의 방식은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 들어주기, 꿈꾸기나 글쓰기처럼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들어 있습니다. 게으름은 어디 아픈 것처럼 꼼짝도 하기 싫어하는 증세가 아니라 천천히, 느리게 있는 그대로 삶을 누리려는 몸가짐이자 마음가짐입니다.

피에르 쌍소 <게으름의 즐거움> 중


달리던 기차를 멈추고 잠시 쉼을 통해 여유와 느림으로 바꿔 쓸 수 있는 게으름


몸에 배어 있는 분주함과 바쁨을 하루아침에 뜯어고칠 수는 없지만, 달리던 기차를 멈추고 잠시 쉼을 통해 여유와 느림으로 바꿔 쓸 수 있는 게으름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혼이 없는 분주함은 분명 우리가 찬양하는 부지런함이나 근면과는 거리가 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착각하며 살기 쉽다.


마음이 잠들어 있을 때 그것이 게으름이다


당신이 시험에 합격 못하고 책을 읽지 못하고 얻는 것이 적은 것, 그것은 무지가 아니다. 진짜 무지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것,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당신의 동기, 당신의 반응이 무엇인지 느끼지 못하고 마음이 잠들어 있을 때 그것이 게으름이다. 

크리슈나무르티 <게으름이 어떻다는 것인가?> 중


나는 지금 게으른 걸까? 넋 놓고 앉아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는 나태와는 거리가 멀지만, 분주함 가운데 중요한 일들을 미루고 사소한 일들에 파묻히는 무기력이 종종 있다. 다행이라면 그걸 알아채고 정확히 바라보려고 노력한다는 것. 마음이 잠들어 버린 게으름에 빠진 건 아니라 마음이 놓인다. "고독과 게으름은 상상력을 자극한다"라는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좋은 글을 쓰기 위해 홀로 고독과 게으름을 누리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가끔 멈춰 서서 돌아보는 여유와 게으름은 우리에게 필수


따다다다,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 잠시 주위를 돌아본다.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히 달리면 달릴수록 목적지에서 멀어지니, 가끔 멈춰 서서 돌아보는 여유와 게으름은 우리에게 필수일지 모른다. 게으름을 맘껏 누리면서도 진짜 게으르지 않기 위해서는 퇴고를 기다리는 원고로 이제 돌아가야겠지?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책과 함께’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책 소개와 책 나눔을 하고 있다.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공저로 <소설, 쓰다>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1:1 글쓰기 코칭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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