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일기를 쓰며
5년 일기를 쓰고 있다. 5년을 연달아 쓴 건 아니고, 3년쯤 쓰다가 멈췄던 일기장을 우연히 찾게 되어 다시 이어 쓰고 있다. 공백이 6년이나 되니, 이 일기장을 다 채운다면 10년이 넘는 내 삶이 고스란히 담길 것이다.
일기장에 뭘 써야 할지 막막할 이들을 위해 일기장은 매일 짧은 질문을 던진다.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가 있다면?” “내 삶에서 가장 결별하고 싶은 것은?”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같은. 짧지만 간단한 질문은 아니다. 매일 질문에 꼬박꼬박 답을 적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볼 수 있다.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는가? 그렇거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이라는 질문 아래 3년 치 답이 적혀 있다. 대부분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고 답하고 있었다. 나의 평범한 하루를 이루는 공통점은 이랬다. 첫째,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둘째, 책을 읽었다. 집에 틀어박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책을 읽는 하루가 가장 폄범한 하루라는 건 6년이라는 공백을 뛰어넘어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도 있다. 일기장에 평범한 하루라며 적어 놓은 ‘바이올린 연습’이라는 말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2년 연속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적어 놓은 그 말이 내 가슴을 송곳처럼 깊숙이 찌르며 들어왔다. 그때는 내가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게 평범한 일상이었다. 바이올린 연습이 꿈이나 기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짐작도 하지 못했다. 긴 시간이 흘러도 재능이 없어 엉터리 연주만 하게 될 거라는 예상은 했어도, 아예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없게 될 거라는 건 장난으로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2년 전 왼손 엄지를 다쳤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작은 부위이기도 했고,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니 침을 몇 번 맞거나 물리치료를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손가락은 회복되지 못했고, 나는 왼손 엄지를 쓰지 못한다. 엄지 없이 단추를 잠그고, 그릇을 나르는 등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바이올린 연주는 할 수 없다.
왼손 엄지는 바이올린 네크를 받쳐 나머지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지지해 줘야 한다. 엄지에 힘을 줄 수 없다면 나머지 손가락으로 정확한 위치를 짚는 것이 불가능하다. 통증을 참으며 지지한다 해도 움직임이 제한되어 손 전체 자세가 흔들리고 음정이 부정확해질 것이다. 특히 비브라토는 엄지의 지지가 없다면 정교한 조절이 어렵다. 왼손 엄지를 움직이거나 힘을 주는 동작이 자주 필요하니, 연주를 시도하면 엄지의 상태는 더욱 악화될 위험이 있다.
하루종일 집에 머물며 책을 읽었다. 평범한 하루라고 일기장에 기록하려다, 특별한 하루였다고 고쳐 적었다. 오늘의 평범한 일상이 내일의 기적일 수 있으니까.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고, 2025년 1월 심리장편소설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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