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May 11. 2020

금지된 재현, 스마트 폰 속에 존재하는 가족

아이들 그림 속에서 발견한 가족의 민낯

마침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며 놀고 있기에 가족을 한번 그려보라고 했다. 두 아이가 각자 그린 우리 가족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스마트 폰 안’에 있었다.  


큰 아이는 여러 대의 스마트 폰으로 화면을 분할시킨 후, 분할된 이미지를 합하면 네 식구의 모습이 되도록 가족을 그렸다. 특히 엄마, 아빠의 모습이 폰으로 인해 심하게 분할되어 있는데, ‘가족을 지켜라 (KEEP YOUR FAM)’라는 문구가 의미심장하다. 
 

큰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막내 아이는 네 식구가 함께 스마트 폰으로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스마트 폰 화면에는 활짝 웃고 있는 네 식구의 얼굴이 사진처럼 들어 있고, 그 앞에 사진을 찍고 있는 식구들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당연히 네 식구 모두 뒷모습이어야 하는데, 두 아이는 뒤를 돌아 정면을 보이며 활짝 웃고 있는 것이다.  


막내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


며칠 전 아이들을 데리고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회를 보러 갔다가 <금지된 재현> 앞에서, 문득 막내 아이의 그림이 떠올랐다. 거울이라면 마땅히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과 정면을 비춰줘야 하는데, <금지된 재현> 속 거울은 뒷모습을 비추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1937)>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우리는 늘 우리가 보는 것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궁금해한다.” 
-르네 마그리트


<금지된 재현> 앞에 한참 서서 그동안 내가 당연히 보고 있다 여기며 보지 못했던 것들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난 2년 여 간 남편이 자주 집을 비웠다. 한국과 중국, 그 외 여러 나라를 왔다 갔다 하며 일을 하느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었다. 우리는 종종 스마트 폰 영상 통화로 대화를 하곤 했다. 함께 있어야 할 가족이 여러 이유로 분열되고 분할되어 있는 모습이 아이의 그림에 고스란히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 19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네 식구가 함께 지내게 되었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떨어져 있는 것이 익숙한 가족인지 모른다. 한 공간에 함께 있지만 각자의 스마트 폰을 들고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식구들을 보며 아이는 가족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 스마트 폰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다 외출을 하거나 외식을 할 때, 남편이 종종 네 식구를 모아 놓고 셀카를 찍었다. 사진을 찍기 전까지 각자 어떤 기분이었든, 어떤 표정이었든,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는 모두 활짝 웃어야 한다. 아이들은 사진이 찍힐 때까지 기다리는 몇 초의 시간도 견디기 힘들어  종종 자세를 흐트러뜨리거나 표정을 바꾸었고, 눈을 감았다.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으면 남편은 여러 번 사진을 다시 찍곤 했다. 아이는 스마트 폰 셀카 안에서 다 같이 활짝 웃고 있는 가족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마치 우리 가족은 오로지 셀카 안에만 존재한다는 듯이.  


전통적 관습을 뒤엎는 도발이고 금지된 재현이라는 걸 알면서도 르네 마그리트는 정면 대신 뒷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그렸다. 그처럼 아이는 온 가족이 스마트 폰 앞에서 셀카를 찍는 그 순간, 도발하듯 뒤로 돌아 사진 속에서보다 더욱 활짝 웃고 있다. 뒤로 돌아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스마트 폰 안에, 사진 안에 갇혀 있지 않아요.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어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이들이 짧은 시간 그려낸 그림 안에서 그동안 실제로도, 사진 속에서도 보지 못했던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림 속 가족의 모습이 바로 우리 가족의 민낯일 것이다. 어떻게든 분할된 가족을 끌어모아 지켜내려는 큰 아이의 모습도, 뒤로 돌아 태연하게 웃으며 ‘나는 그래도 살아있어요’ 하는 막내 아이 모습도 모두 고맙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오랜 시간 함께 지내는 요즘, ‘함께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묻고 또 묻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통만큼 성숙한다지만 사실은 황폐해진 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