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_장석주
딸기
-장석주
비애로 단단해진 너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의
목록 속에 있다
초록 줄기에 알알이 맺혀 있는 너는
별들의 계보에 속해 있다
그러나 붉은 것은 왜 오래가지 않는가
섹스 후 동물은 왜 슬픈가
차마 꽉 깨물어 터뜨리지 못한 채
혀 위에 올려놓고 굴리는
이 정체불명의 비애가 나를 울린다
'그러나 붉은 것은 왜 오래가지 않는가'
아름다움은, 기쁨은, 열정은, 사랑은, 낭만은...
내 안엔 ‘머무르는 피’가 없어요.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뭐랄까 쌀밥 속에 끼어든 보리쌀처럼 혀 위에서 한참을 섞이지 못하고 맴돌았다. 그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감촉을 즐기며 한참을 혀 위에서 굴리다 마침내 '톡' 하고 터뜨렸을 때의 그 맛이란.
움켜쥐고 싶다. 꽉 움켜 잡아, 아무도 모를 내 주머니 안에 쏙 집어넣고,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머무르는 피'가 없는 그녀를 내 안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고 싶다.
그 순간 지난 십여 년 간 단 한 줄도 나와주지 않았던 문장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너무도 놀라 내가 망연히 그 문장을 혀끝에 놓고 굴리고 있을 때, 그녀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막연히 동쪽 하늘 어스름 가운데 빛의 잔영이 남는 것으로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짐작해 볼 뿐.
아, 뮤즈를 놓쳐버린 시인의 허망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