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최승자 - 참 우습다

by 윤소희

참 우습다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언젠가 70이 가까운 어떤 여자분이 끼적이며 적어 놓은 연애편지를 본 적이 있다.

손주에게 폐지를 건네주다 실수로 내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부치지 못했던 연애편지를.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 적은 그 글씨들.

그 안에는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하는 설레는 마음,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 글만 보고 누가 70이 다 된, 손주가 몇이나 있는 할머니의 글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감사하고, 기뻐하고, 소망하고 있는데.


아직 50에도 못 미친 나는 부끄럽게도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하고 있었다.

주위의 누군가에게 섭섭해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노여워하며.


참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