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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24. 2020

말이 아닌 자신만의 언어를 갖는 것

가족 밴드 2주 만에 다시 합주

2주 만에 합주실 가는 길, 큰 아이가 머리와 배가 아프다며 또 축 늘어졌다. 아슬아슬 줄 위를 걷는 기분이었지만 무사히 합주를 마쳤다. 며칠 전 기타를 사준 덕분에 아이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기타 솔로도 시도할 수 있었다.  


Bon Jovi 'Have a Nice Day' 기타 솔로 부분 첫 도전


기타 솔로를 위해 며칠 연습하는 아이를 보며, 진작 기타를 사 줄 걸 후회했다. 사실 아이에게는 기타가 이미 있다. 그래서 새로 사 주는 걸 망설였던 것이다. 코로나 19를 피해 잠깐 머물다 돌아갈 생각으로 가볍게 짐을 꾸려 나왔는데, 집을 떠난 지 100일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금방 돌아갈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를 접자, 기타를 다시 사 줄 수 있었다.


새로 사 준 기타


집을 떠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다. 밤중에 아이 심박수가 130을 넘으며 불안증세를 보여 응급실을 다녀오는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문득 친척 중 심장질환으로 요절한 사례들이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동 심장전문의에게 여러 검사들을 받은 후 심장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는데 한 달 반이 걸렸다. 이제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등 심리적 질환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 후에도 증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진단명을 받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는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는지 모른다.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는 소식들, 분노와 혐오를 조장하는 뉴스들, 좁은 공간에서의 답답한 생활, 운동 부족…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 간다. 예민한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무게였을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나 힘든 점을 속 시원히 표현하면 좋을 텐데. 정말 하고 싶은 말, 필요한 말은 좀처럼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말은 참 무력하다. 아이는 대신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Garage Band 앱으로 음악을 만들거나 기타를 연주한다. 아이가 입을 대신해 자신을 표현할 통로를 찾아가니 다행이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을 향해 스스로 길을 더듬어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ZICO의 '아무노래' - 피아노가 없어 Garage Band 앱으로 연습했는데 키보드가 꽤 늘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는 등 말 대신 다른 언어를 갖는 일에는 분명 힘이 있다. 자신만의 표현 수단을 갖는다는 건 존재의 빈곤에서 아름다움을 건져내는 길이며, 삶이 무너질 때조차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는 걸 아이도 조금씩 알아가겠지. 아이의 모든 짐을 내가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함께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며 그 곁을 지키며 조용히 응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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