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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21. 2020

황과(黄瓜:오이)는 왜 노란색이 아니지?

이름조차 묻지 않는 밴드

황과(黄瓜)는 왜 노란색이 아니지? 


초록색 오이를 왜 '노랑 오이(黄瓜)’라고 부를까 하는 질문을 책 속에서 발견하고 충격을 받았다. 중국에서 14년째 살고 있는 내 귀에 ‘황과’라는 발음은 자동적으로 ‘오이’로 번역된다. ‘오이’로 번역된 순간 색에 대한 어떤 호기심도 사라진다. 황(黄)과 과(瓜)라는 글자를 무수히 보았음에도 단 한 번도 따로 떼어 보지 못했다. 초록색 오이를 주문하고, 초록색 오이를 씻고, 초록색 오이를 썰어서, 초록색 오이를 입에 넣고 씹으면서도 왜 이름에 ‘황(黄)’, 곧 ‘노랑’이라는 글자가 들어갔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 것이다. 너무 익숙하고 잘 아니까,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얼마 전 30대에서 50대, 직업군도 다양한 일곱 명이 모여 밴드를 조직했다. 밴드를 만든 후에야 악기를 처음 만져본 이들도 있는 그야말로 ‘왕초보' 밴드. 두어 달 합주 연습 끝에 세 곡을 완주한 기념으로 조촐한 기념 파티를 했다. 물론 여기서 완주는 곡을 완성했다는 뜻이 아니라, 악보대로 끝까지 연주를 해봤다는 뜻이다. 첫 합주 때 겨우 전주 여덟 마디를 한 시간 반 동안 연습했으니,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뜨리지 않고 연주했다는 것도 파티를 할 만큼 큰일이다. 


두어 달 합주 연습 끝에 처음으로 곡을 완주하고 회식하는 밴드, 날벼樂


꿈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일곱 명이 서로의 본명이 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누가 짚어주자, 우리는 까르르 웃었다. 두 달 넘게 매주 모여 여러 악기의 소리를 조율하며 신나게 합주를 했으면서 우리는 서로의 본명을 모른다. 그뿐 아니라 나이는 몇인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직업이 무엇인지, 어디에 사는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만났다면 처음 만났을 때 이미 파악될 호구조사 내용을 물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에 대해 정말 모를까? 일곱 명 모두 글을 통해 만난 글벗들이다. 서로의 글을 읽으며 서로의 삶을 읽어왔다. 글을 통해 그 누구에게도 쉽게 보이지 않는 상처를, 가슴속 공허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정을, 터져버릴까 조심조심 붙들고 있는 각자의 꿈을 읽어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의 눈치를 보며 끄집어내지 못했던 내밀한 부분을 글을 통해 조심스레 열어보였다. 그리고 열린 문틈으로 서로의 경계 너머를 살며시 들여다보고는 자신의 가슴에 고이 새겼다. 


하지만 이제 친해졌다, 많이 알고 있다는 착각으로 함부로 서로를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서로의 이름도 모르는 사이라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내밀하고 은밀한 많은 것을 공유하고도 여전히 서로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세상 누구도 알아봐 주지 못하는 서로의 모습을 낯선 시선으로 알아채 주고 발견하는 벗들.  


내가 사랑하는 벗들의 이름을 묻지 않아 다행이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래서 조금씩 알아가는 모든 순간이 설렌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로 와서 꽃이’되는 대신 그 무엇도 아니면서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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