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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27. 2020

축구공이 열린 나무

잠시 노선을 이탈할 때 새로운 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커다란 나무 밑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어 가 보니, 축구공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축구공이 걸린 나뭇가지 높이가 족히 4,5미터는 되니, 아이들이 제아무리 높이 뛰어도 축구공에 닿는 건 어림도 없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나왔다. 살짝 비가 내린 후라 잔디밭은 촉촉했고, 햇살은 너무 따갑지 않고 맑았다. 축구공이 걸려 있는 나무는 초여름의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고, 그 밑에서 겅중겅중 뛰는 아이들은 안타까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기는 듯 보였다. 축구공이 열린 나무와 아이들이 담긴 푸른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아름답고 평화롭다.
 

맑은 빛을 받으니 소란스러운 풍경이 그저 반짝거린다


마침 남편이 물을 사 오기 위해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아이들은 겉옷을 벗어 담아둔 가방을 던져 보기도 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긴 나뭇가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나무 밑에서 둘이 속닥속닥하며 전략을 짜는 모습도 다정해 보였다.  


아이스크림과 물을 사 가지고 돌아온 남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무에 걸려 있는 축구공을 보고 귀찮아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기는 얼굴이다. 아이들이 나무 그늘 아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켜보는 동안, 남편은 축구공을 겨냥해 물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병은 턱없이 멀리 날아가기도 했고, 아슬아슬하게 빗나가기도 했다. 바닥에 툭툭 떨어지는 물병을 보며 물병이 먼저 터져버리는 건 아닌가 조마조마했다. 스무 번쯤 던졌을까, 마침내 나무에 매달려있던 축구공이 땅으로 툭 떨어졌다. 


공이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박수를 쳤지만, 솔직히 아쉬웠다


축구공은 마땅히 땅 위에서 발로 차이라고 만들어졌지만, 땅 위에서보다 나무 위에 매달려 있을 때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을 주었다. 나도, 내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늘 가던 길 말고 잠시 노선을 이탈할 때,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삶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지 모른다. 늘 하는 일 말고 나 자신을 잠시 다른 용도로 사용해 본다면, 나무에 열린 축구공처럼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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