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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26. 2020

같은 일 다른 느낌

무엇을 하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건 어떻게 하느냐

카페에서 아이가 유리컵을 깨뜨렸다. 아이도 나도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종업원이 먼저 다가와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고 부드럽게 물었다. 그뿐 아니라 파편이 꽤 멀리 튄 것 같으니, 셋 다 테이블을 옮기는 게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다. 두 아이와 나는 겨우 음료 석 잔을 시켜 놓고 테이블을 세 개나 점거하고 있었음에도, 세 테이블을 더 내준 것이다. 아이들과 나는 잔뜩 어질러 놓은 테이블을 남겨두고, 이미 깨끗하게 치워 놓은 다른 테이블로 옮겼다. 깨진 유리컵에 대한 배상 요구도 없었다. 그저 그에게 귀찮은 일거리만 잔뜩 만들어준 셈이다. 그는 깨진 유리조각들을 부지런히 줍고, 걸레질을 여러 번 했다.


(집이 너무 답답할 때 아주 가끔) 카페에서 온라인 수업하는 아이들


물론 그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한 것이다. 카페나 식당에서 음료를 엎지르거나 컵을 깨는 실수를 처음 한 게 아니었으니, 다른 종업원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꽤 많이 보아왔다. 누구나 다가와서 엎지른 음료를 닦고, 깨진 파편들을 치운다. 하지만 다가오는 속도나, 일을 처리하는 태도, 내게 던지는 말의 온도 등은 모두 달랐다. 


 

그는 문제를 발견하자 신속하게 달려와서 처리하기 시작했고, 실수를 저지르고 조마조마해하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고 배려해주었다. 분명 귀찮은 일이었을 텐데 밝은 표정으로 깨진 유리 파편을 줍고, 걸레질을 여러 번 하는 그의 모습은 심지어 그 일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무엇을 하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그걸 '어떻게 하느냐'가 아닐까. 


그런 그의 모습이 묘하게 감동을 주었고, 나를 움직이게 했다. 얼른 근처 빵집에 가서 막 구운 빵 몇 개를 사 그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건넸다. 그는 괜찮다고 사양하다 쑥스러워하며 빵을 받았다. 공손하게 빵을 받는 그 모습도 보기 좋아 다른 걸 더해주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한동안 ‘무엇을 쓸까’로 고민하던 나는,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왔을 때 ‘어떻게 쓸까’를 조금 더 고민하게 되었다. 어차피 해 아래 새로운 일이나 사건도 없고, 나 혼자만 하는 생각이란 것도 없고, 나만 가 본 곳이나 나만 읽은 책 같은 건 없다. 하지만 같은 걸 쓰더라도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글이 될 것이다. 새로운 소재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서도 애를 써야겠지만, 그걸 어떤 온도와 습도의 문장으로 담아낼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더 힘써야겠다.  


우리의 마음과 몸을 움직이게 하는 건 생각이나 논리보다는 어쩌면 우리의 ‘느낌’ 일 테니까. 나나 내 글은 지금 누군가에게 어떤 느낌을 주고 있을까.  




사족: 세심한 종업원의 배려에 감동해 근처에 수많은 다른 카페가 있음에도 아마 앞으로 그 카페로 계속 가게 될 듯하다. 


“고객의 68%는 직원의 형편없는 태도에 실망해서 그 기업을 등진다. 41%의 고객은 직원의 훌륭한 태도에 반해 해당 기업에 ‘충성도’를 보인다. 고객들의 브랜드 경험이나 인식을 형성하는 70%는 ‘사람’이다.”
(Alan Brew, <Building brands from the inside out>, WKF,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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