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하고 있는 모든 것 이제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단편소설: <스마트한 당신만 읽으세요> 10화 (최종)
1화
https://brunch.co.kr/@yoonsohee0316/208
9화
https://brunch.co.kr/@yoonsohee0316/226
잠깐! 당신은 특별히 스마트하고 신중한 소수의 독자니까 당신한테만 비밀을 알려줄게요.
1048년 버트럼 포러는 학생들에게 성격검사를 하게 한 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자의 분석 결과라며 모두 똑같은 결과지를 보여줬습니다. 학생들은 이 가짜 분석 결과가 85% 정도 정확하다고 답했고요. 이 글 첫머리에서 내가 당신의 성격을 묘사했던 부분 혹시 기억나나요? 대부분은 이 실험에서 가져오고, 인터넷에 떠도는 성격검사 결과지 문장 몇 개를 짜깁기한 겁니다. 당신이 때로 혈액형이나 사주, 점성술, 타로 카드의 점괘에 혹하는 건 바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모호한 진술이 자신만을 위한 거라 믿는 포러 효과(Forer effect), 즉 넓은 의미의 주관적 검증(subjective validation)의 오류 때문이랍니다. 당신은 자신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개성 있는 존재라 굳게 믿고 있지만, 사실 당신이나 나나 생각했던 것보다 유사한 존재들인 거죠.
그리고 ‘운명’적인 사건들. 아무런 규칙이나 의미 없이 일어나는 산만한 사건들에 규칙성과 연관성을 부여하며 의미를 추출하는 인식 작용을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합니다. 이 글 초반에 나열한 운명 같은 사건들처럼, 아주 사소한 동시성이나 유사성도 뭔가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나요? 수천 가지의 차이점은 무시하고 몇 개의 비슷한 점들을 모아 의미를 부여해 멋진 이야기를 만드는 거죠.
수학교수 리틀우드의 법칙에 따르면, 확률 100만 분의 1이라는 기적 같은 우연이 누구에게나 한 달에 한 번씩은 일어날 수 있다고 하는군요. 아포페니아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착각에 빠지긴 하지만, 뭐 그 때문에 나 같은 작가와 예술가들, 영화감독 등이 먹고살 수 있으니 전혀 불만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하죠.
어딜 가나 ‘운명’이란 단어가 눈앞에 나타날 거란 주문은 어땠나요? 이 글을 손에 놓지 않고 단숨에 읽은 독자라면 확인해 볼 충분한 시간이 없었겠군요. 이 주문 역시 실현되겠지만, 온 우주가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따위의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일뿐이죠. 임신한 후에는 어딜 가나 아기만 보이고, 이별한 후에는 사랑 노래만 들리고. 믿고 싶지 않겠지만, 당신의 뇌가 세상을 한 번 걸러서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정보만 떡하니 앞에 끌어다 놓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쯤 몹시 기분이 나빠졌을 겁니다. 뭐 이런 형편없는 글이 다 있냐며, 이런 한심하고 짜증 나는 글을 쓴 저의 인격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내 이럴 줄 알았어.”하며 잠시라도 속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겠죠? 바로 지금 당신처럼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 발생하면 바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기억을 뒤집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사후 판단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하죠. 당신도 스마트한 당신 뇌에게 감쪽같이 속은 것뿐이니, 죄책감 같은 걸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당신은 여전히 당신을 평균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것도 자기 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에서 비롯한 기만적 우월감 효과(illusory superiority effect)죠. 당신만 그러는 게 아니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 주변에 있는 가족, 친구, 동료들 모두 자신은 평균보다 더 매력적이고, 평균보다 더 스마트하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요.
스마트한 당신, 속으로 남보다 낫다고 자신하면서도, 당신의 그 똑똑한 머리로 날마다 실수하고, 또 그 실수를 덮기 위해 가짜 논리를 만들어내고, 다시 그 가짜 논리를 믿으며 자신을 속이고 현실과 타협하고. 휴우!
어때요? 당신의 그 스마트한 머리가 혹시 지금도 당신을 속이고 있지 않은지 한 번쯤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참, 머리 나쁜 사람들에겐 이런 얘기 비밀입니다. 말해봐야 뭐, 절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치, 이게 뭐야?” 할 테니까.
설마, 당신이?
(The End)